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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공산주의 성지 쏘련에서 혁명리론과 군사를 익히다
날짜  2013-10-12 10:00:43   조회  1172

지금까지의 양림의 연구와 관련자료들 거듭 검토를 보면 양림과 리추악은 광주봉기에 근본 참가하지 않은 모양이다. 아무런 자료도 보이지 않는다. 양림에 대한 깊이있는 연구결과로 보면 양림부부는 남창봉기후 광주로 남하하지 않고 당조직의 파견으로 직접 쏘련행에 오른것으로 나타난다. 양림을 연구하거나 쓰고있는 허다한 자료들은 양림이 남창봉기가 실패한후 쏘련으로 갔다고 다루고있다. 그럼 그 정확한 시간이 언제일가? 누구도 설득력이 있는 해답을 내리지 못하고 1927년 8월이라거나 1927년이라거나 남창봉기후라고 모호하게 스치고 지나간다. 최근에 필자는 설득력이 있어보이는 자료를 찾았는데 비교적 신빙성이 있다고 믿어진다.

1927년 남창봉기 실패후 중공중앙은 한패의 간부들을 쏘련에 보내여 학습하도록 했다. 그중에는 류백승, 하룡, 엽검영, 오옥장 등 30여명이 들어있다. ……이 패의 중공간부들가운데서 엽검영, 오옥장 등은 모스크바 중산대학으로 가고 류백승 등 10명은 쏘련홍군고급보병학교에 들어갔다.

1927년 11월, 중국 남방의 겨울은 사람을 지지누르는 감을 준다. 류백승은 하룡, 업검영 오옥장 등 30여명과 더불어 상해에서 “해삼위”(지금의 울라지보스또크)로 떠나는 쏘련 화물선에 올랐다.

이 두편의 자료를 보면 첫번째 자료는 류백승, 엽검영 등 동지들의 회고자료에 따라 밝힌것이기에 력사사실과 너무나 잘 어울린다. 두번째 자료는 류백승의 회고와 쏘련행에 비추어 쓴것이기에 쏘련 향발 시간도 밝혀지면서 출처가 첫자료와 같음을 시사하고있다. 두 자료는 중공중앙 파견, 류백승 등 30여명, 상해―울라지보스또크 쏘련 화물선 등이 모두 같음을 보이여 류백승의 회고에 준하고있음을 알려준다.  또 “류백승: 쏘련군관학교에서의 중국참모장”을 쓴 저자는 《환구》잡지 모스크바주재  기자 사영(谢荣)이여서 류백승의 쏘련행을 훤히 통하고있었다. 이런 자료들에서 비록30여명중 양림의 동행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필자는 양림과 리추악도 이들과 함께 쏘련행에 올랐다고 지적하고싶다. 이제 뒤에서 씌여지는 본문에서 보게 되겠지만 양림의 모스크바 중산대학 학습과 쏘련보병학교 학습이나 류백승, 오수권 등의 회고문장은 양림의 모스크바 학습생활과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 양림은 남창봉기후 중공중앙에서 쏘련으로 보내는 30여명 동지들속에 섞일수 있는 사람이였다. 양림의 신흥무관학교, 청산리전투, 운남강무당, 황포군관학교 시절 경력과 국민혁명군 독립퇀 시절 경력이 이를 말해주고있었다. 그는 황포군관학교 시절 주은래의 수하의 중국공산당 당원이고 중국으로 진출한 조선인혁명가들의 출중한 대표중의 한 사람이였다. 1927년 11월, 양림은 중공중앙의 신임을 안고 류백승 등 30여명 동지와 함께 상해에서 쏘련 극동지역의 울라지보스또크로 향하는 쏘련 화물선에 몸을 실었다. “류백승: 쏘련군관학교에서의 중국참모장”에 따르면 이들 30여명은 배편으로 울라지보스또크에 이른후 울라지보스또크의 한 려관에서 약 한주일을 기다리다가 모스크바로 떠나는 렬차에 올랐다. 가고가고 또 가는 머나먼 려정이였다. 모스크바에 가서 엽검영, 오옥장, 양림 등은 모스크바 중산대학에 입학하고 류백승 등 10명은 쏘련홍군고급보병학교에 입학하였다. 양림은 이국땅 쏘련 모스크바에 가서 처음에는 안해 리추악과 더불어 모스크바 중산대학에 들어가 1년간 전문 정치리론과목을 배우며 쏘련혁명의 경험을 연구하다가 모스크바보병학교에 전학해 군사를 배웠다고 한다. 양림 관련 여러 자료들이 이렇게 말하고있다. 황포군관학교넷의 “황포3기 필사제-장정중의 조선적 홍군장령”도 그러하고 소현사 저, 중국당사출판사 출판으로 된 홍군장정기록총서 《동방매력―장정과 외국인》(2006년 1월 출판)도 그러하다. 필자도 양림전기를 처음 정리할 때 양림은 모스크바 중산대학에서 정치리론을 1년간 배우다가 모스크바륙군보병학교에 전학하여 리추악과 함께 군사지식을 배웠다고 썼다. 이는 몇해전의 일인데 지금 시각으로 보면 문제점들이 없지 않다. 소홀한 관계로 양림의 모스크바 학습시절 쏘련 동방대학에 가 공부한적 있은 광주 중산대학 출신 요위화(饶伟华)의 회고 구술자료를 중시하지 않았었다.

요위화의 구술에 의하면 그는 1926년말에 조직의 파견으로 쏘련의 동방대학에 가 학습하게 되였다. 모스크바동방대학은 쏘련공산당 중앙에서 전문 혁명간부를 양성하기 위하여 1921년 10월 21일에 개학식을 가진 정치대학이다. 대학의 전칭은 “모스크바동방로동자공산주의대학”이고 략칭이 동방대학으로서 쏘련 동부지역의 민족간부 양성과 동방 여러 나라들 혁명인재의 양성을 주요취지로 하고 대학내에 쏘련부와 외국부를 설치하였다. 외국부에는 중국어, 조선어, 일본어, 토이기어, 프랑스어, 영어 등 7개 반을 두어 모두 자기 민족 언어로 강의할수가 있었다.  1927년에 요위화는 동방대학에서 리추악을 알게 되였는데 리추악은 양림과 같은 대학이 아니였다고 말한다. 요위화가 말하는 1927년은 양림과 리추악으로 말하면 1927년 11월 이후를 가리킨다.

모스크바중산대학은 모스크바 볼본까 큰거리 16번지에 자리잡았다. 캠퍼스내에는 3층 청사를 가진 소별장이 있고 화원과 롱구장, 배구장, 스케트장(溜冰场)들이 있어 제격이였다. 이곳은 일찍 모스크바의 학교들치고 가장 옛스럽다는 중학교인 모스크바 성립제1문과중학교 소재지였다고 한다. 모스크바중산대학은 이곳에 자리잡은후 대학이 존재한 5년간 선후하여 859명의 중국 국공 량당의 류학생들을 받아들이고 양성하는 자랑찬 성과를 올리였다. 그가운데서 중국공산당측의 등소평, 진백달, 우란후, 엽검영, 동필무, 림백거, 하숙형, 진소우(왕명), 진방헌(박고), 장문천 (락보), 왕가상, 양상곤 등과 국민당측의 장경국, 곡정강,곡정정,등문의,정개민,강택 등 쟁쟁한 인물들이 있었으니 모스크바중산대학은 중국의 국공 량당을 위해 많은 간부들을 키워주었다. 이같은 모스크바중산대학이 1927년 장개석의 상해 4.12반혁명정변, 국민정부 주석 왕정위의 무한 7.15 배반으로 말미암아 발랄히 발전하던 국공합작은 파탄되고 중쏘관계도 긴장한 상태에 들어선다. 1927년 7월 26일 국민당중앙집행위원회는 모스크바중산대학을 “취체”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8월 5일에 쏘련에서 류학하는 국민당 학원들을 돌아오라고 명령한다. 국공 량당 관계, 중쏘 량국 관계가 긴장하던 이런 시절에 양림은 당의 파견으로 리추악과 더불어 쏘련행에 오르고 모스크바중산대학에 들어간다. 바로 그 시절인 그해(1927년) 12월 14일에 중쏘 두 나라가 외교관계를 단절하게 되면서 중산대학의 성격은 주요하게 국민당 학원을 모집하던데로부터 중국공산당을 위해 고급정치간부를 양성하는데로 바뀌여진다. 1928년에 동방대학의 중국반이 중산대학으로 넘으면서 중산대학의 학원들은 모두가 중공당원과 공청단원들로 이루어졌다. 중산대학의 학원들은 입학하면 먼저 로어를 배워야 한다. 첫 학기는 매일 로어수업을 4시간씩 받아야 하니 쉽지가 않았다. 양림은 로어공부의 어려움을 풀어가면서 첫학기 다른 과목들인 정치경제학, 력사, 현대세계관, 련공당사, 민족과 식민지 문제 등을 모두 소화하였다. 두번째 학기에는 중국혁명운동사, 세계통사, 맑스주의철학, 레닌주의원리, 경제지리 등 과목들이 이어섰으나 역시 모두를 배워냈다. 이밖에 매주 하루씩  보병조전(操典), 사격, 무기수리 등 군사훈련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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