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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기여를 한 홍군음악가 최음파
날짜  2015-4-7 8:19:01   조회  655

이 돌연적인 소식은 대다수가 나어린 소년, 소녀로 이루어진 공연조를 멍하게 만들었다. 가장 어린 배우는 구란과 곽적해로서 이들은 금방 8~9살밖에 되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울음이 터져나왔다. 동지들과 더불어 최음파의 마음도 괴롭기가 그지없다. 중앙수장들을 떠나고 홍군 주력대오를 떠나는 감수를 알것 같았다.

“괴로와들 마십시오. 앞으로 멀지 않아 우리는 그들을 다시 보게 될것입니다.”

구추백이 말을 이으며 동지들을 위안하였다. 그의 낯색은 창백하며 부어있었고 페병은 아주 중한편이였다. 그러면서도 동지들을 념려하며 위안하는 자애로운 모습을 보며 최음파일행은 심히 감동되였다. 공연조의 어린이들은 부모를 잃은 아이가 부모의 품으로 다시 돌아오는 기분이였다.

산아래쪽으로 홍군의 발자취소리, 말발굽소리가 그칠줄 몰랐다. 구추백의 비서 장동효가 최음파일행을 집안으로 안내하였다. 취사원은 재빨리 저녁밥을 지었다.

저녁식사가 끝난후 구추백은 다시 동지들을 위안하면서 말하였다.

“우리 부대가 다 떠나지 않았습니다. 중앙동지들도 남았습니다. 동무들은 남아서 부대와 군중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공연할수 있으면 공연하고 아니면 구두선전도 좋은 사업입니다.”

공연조 20여명 동지들의 마음은 차분히 가라앉았다. 최음파 등은 자기들 어깨에 지워진 책임의 무거움을 깊이깊이 느끼였다.

이어 구추백은 기름등잔을 켜놓고 석련성을 부르더니 종위검(钟伟剑)이 석련성에게 남긴 담요, 모기장, 털실옷과 근거지에서는 보기 드문 회색 라사천바지 한벌을 내주었다. 종위검(1907ㅡ1935.2)은 호남 례릉 도화향 출신으로서 중앙혁명근거지 홍군학교에서 기술교원, 훈련부 부장 겸 제2퇀 퇀장으로 활동하면서 석련성을 알게 되고 사랑을 속삭이게 되였다. 석련성이 홍3군단 공연길에 오른후 중앙군위 간부퇀 참모장으로 부임하면서 전이길에 오른 종위검은 사랑하는 녀인에게 담요와 털실옷 등을 남기였던것이다. 붉은 잉크로 정성들여 쓴 편지도 있었다. 편지속에는 근거지에서 사용하는 몇장의 표도 깃들었다.

이제 갈라지면 또 언제 만날는지, 석련성은 강인하게 눈물을 참느라 하였지만 눈물은 종내 흐르고야말았다. 구추백은 석련성을 위안하면서 “괴로와하지 마오. 울지도 말고. 앞으로 만나게 될 기회가 있을것이요. 우리는 꼭 우리의 중앙홍군을 보게 될것이고 당중앙과 모주석을 보게 될것이요”라고 말하였다. 최음파도 자기와 함께 지내던 종위검이 떠난것을 알고 석련성을 고무하면서 중앙혁명근거지에서 계속 싸워가자고 힘을 실어주었다.

최음파일행이 구추백을 만난 시각은 1934년 10월 10일 저녁이였다. 이날 밤 서금을 중심으로 중앙혁명근거지에서 활동하던 중앙홍군 8만 6000여명은 근거지를 떠나 장정길에 올랐다. 중공중앙과 중앙군위, 중화쏘베트공화국 정부도 중앙홍군을 따라나섰다. 1933년 9월부터 시작된 제5차 반 “토위토벌”전은 옹근 한해나 지속되다가 끝내는 실패하여 중앙홍군은 부득불 중앙혁명근거지를 떠나 전이길에 오르지 않을수 없었다. 뒤늦게야 눈앞의 현실을 헤아리게 된 공연조의 동지들은 일순 기분이 뚝 떨어졌다가 다시 원 상태로 돌아왔다. 최음파와 그의 동지들은 홍3군단을 찾았을 때 홍군장병들 저저마다 초신 만들기에  여념이 없던 원인을 마침내 알게 되였다.

이튿날 10월 11일 날, 부상된 몸으로 서금병원에 남아있던 진의는 구추백을 보고 어째서 아직도 떠나지 않는가고 하더니 자기가 타던 말을 내주면서 빨리 홍군주력부대를 따르라고 하였다. 구추백은 깊은 감동을 받았다. 구추백이 중앙에서 자기를 근거지에 남기였다고 해서야 진의는 어인 영문임을 깨달았다. 당내 “좌”경로선의 타격을 입던 구추백은 물론 “좌”경로선과 엇서거나 피해를 당하던 동지들, 이른바 “오유”를 범하고 해탈되지 않던 허다한 동지들이 “좌”경중앙의 오유적결정으로 장정에 참가할 권리를 박탈당한 처지였다. 그외도 근거지에는 홍군 류수(留守)부대와 지방유격대 1만 6000여명과 당정기관의 사업일군들, 홍군 상병원들 도합 3만여명이 남아있었다. 최음파 등 공연조 동지들과 한 구추백의 말은 사실이였다.

10월 14일, 중앙혁명근거지에 남은 당정기관의 지도일군들은 한자리에 모여앉아 쏘베트구역 중앙분국 제1차 회의를 가지였다. 회의에서 항영은 중공중앙의 정신을 전달하면서 쏘베트구역 중앙분국과 중앙정부 판사처의 정식 설립을 선포하였다. 중앙분국은 항영, 진의, 진담추, 구추백, 하정, 등자회, 장정승, 진담림, 량백대, 모택담, 왕금상, 리재련 등 동지들로 구성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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