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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전설, 항일장령 무정장군의 인생비화
리함
날짜  2016-12-12 7:52:00   조회  829

 아서와 아계 사이 천험지대. 무정이 비밀무선전암호로 통과한 곳.(2011년 8월 1일 현지촬영)

무정이 빠진 사이

달 밝은 밤이였다. 도중에 진창호 홍4방면군측에서 한패의 인원을 파견하여 엽검영과 양상곤을 체포하고저 했지만 헛수고였다. 그들이 도보로 무사히 홍3군단 주둔지에 도착하니 모택동은 이미 무정이 전한 새 무선전암호에 의해 홍1군단 림표와 섭영진에게 전보를 보냈고 모택동, 주은래, 왕가상,팽덕회 모두 초조한 심정으로 엽검영과 양상곤을 기다리고있었다. 주인이기도 하고 이곳 홍군부대—홍3군단을 거느린 팽덕회는 초조한 나머지 들락날락하며 진정을 못했다. 모택동은 “당신들을 위해 정말 걱정하였다”고 말했다.

뒤늦게야 진창호는 중앙홍군이 파서지구를 빠짐을 알게 되였다. 우로군에 속한 홍군학교의 정치위원 하위(何畏)가 장국도에게 전보로 알리고 진창호에게 전화하면서 중앙홍군이 떠났고 우리를 경계하고있는데 싸우지 않겠는가고 청시한것이였다. 홍군학교 특과퇀 정위 송임궁은 회고록에서 하위는 제4방면군 제9군 군장으로서 장국도의 적극적인 추종자이고 후에 연안에서 장국도의 착오를 비판할 때 도망친자라고 지적하였다. 이런 사람이다보니 홍군학교 특과퇀이 북상출발하였다는 소식을 접하고 급급히 행동하여 나섰었다.

급해난 진창호는 여기저기 전화를 걸며 부분 간부회의를 부르더니 좌중을 둘러보며 말하였다.

“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1방면군이 달아났습니다. 우리가 부대를 보내 추격할가요?”

“홍군과 홍군이 싸우는것을 보았습니까?”

서향전의 뜻은 아니다였다. 싸울수 없다였다. 그런데 홍군학교 정위 하위는 부대를 풀어 추격해야 한다며 마구 떠들어댔다. 서향전은 단호히 반대해 나섰다. 회의참석자들은 서향전의 의견을 따랐다. 진창호는 더 말하지 않았고 홍군이 홍군과 싸우는 일대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다. 서향전은 홍4방면군과 홍1방면군의 상잔을 성과적으로 막아낸 1등공신이였다.

그러나 일은 여기에서 끝난것이 아니였다. 회의후에 진창호는 홍군학교 교육장 리특(李特)이 홍군학교와 4방면군의 한패의 사람들을 데리고 중앙을 추격하도록 했었다. 중앙조직부장을 맡은 리유한은 이때의 리특은 제4방면군의 특무대대장이였다고도 회고하고있다. 관련 자료에 따르면 리특은 쏘련 레닌그라드 류학생이지만 성격이 조폭하고 쩍하면 남을 욕하기 좋아하는 사람이였다.

이럴즈음 모택동이 지휘하는 홍군부대는 밤의 어둠을 타서 파서에서 20리쯤 되는 곳에 이르렀다. 날이 곧 밝으려는 때인데 홀연 뒤에서 행군정지명령이 들려왔다. 우로군총지휘부 진창호가 보낸 리특일행이였다. 그때 모택동은 왕가상, 장문천, 엽검영, 양상곤 등 중앙지도동지들과 함께 홍군학교의 앞에서 행군하다가 산언덕의 한 자그마한 평지에서 멈춰섰다. 홍군학교 특과퇀의 위국청, 송임궁, 양림 등 지도자들도 모택동의 옆에 다달았다.

기고만장한 리특은 총을 지닌채 살기등등해서 “총부 정치위원 장국도가 남하를 명령하는데 당신들은 어찌하여 북상하는가?”고 질문을 들이댔다. 모택동은 태연하면서도 엄숙하게 “이는 중앙정치국의 결정이다”라고 말했다. 리특의 몇몇 경위원들은 격발기에 손가락을 대고 총을 들고있었다.

하지만 “하루 강아지 범 무서운줄 모른다”고 리특은 너무도 오만하고 현실을 정시할줄 몰랐다. 장정길의 모택동 등 중앙수장들은 언제나 중앙종대, 간부퇀과 함께 움직이고 좌우, 앞뒤에는 모두 홍3군단이 철저히 지켜서있다. 리특이란 이 소인이 일대 위인 모택동과 오만무례하게 놀 때 팽덕회는 3군단을 지휘하여 후위를 맡으며 가까이에서 경계하고있었다. 리특이 한 순간이라도 잘못 내디디면 3군단은 즉각 자위반격을 취할것이였다. 그뿐인가, 모택동의 신변에는 양림소속 특과퇀이 엄정대기하고있다.

이를 잘 모르는지 리특은 큰소리로 그 무슨 “도망주의”요, “강서 쏘베트근거지를 포기한 죄인”이요 하면서 모택동을 되는대로 질책했다. 이때 모택동의 신변에는 리특을 노려보며 리특의 권총방아쇠만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독일인이고 제3국제에서 파견한 군사고문 리덕으로서 특과퇀과 함께 행동하고있었다. 리덕은 중앙혁명근거지 시절과 준의회의 이전의 장정길에서 박고와 같이 왕명의 착오적로선을 극구 실시하면서 우리 당과 홍군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사람이였다. 그런 사람이 당과 홍군을 분렬시키려는 장국도의 행동에 대해서는 지대한 불만을 가지고 나는 당신들 중앙과 줄곧 분기가 있었지만 장국도의 분렬행동 앞에서는 당신들 중앙의 주장을 옹호한다고 자기 견해를 터놓기까지 하였다.

그러던 리덕은 눈앞의 리특이 펄펄 뛰자 자기를 통제할줄 모른다고 여기면서 불시로 리특을 꽉 껴안았고 리특은 리덕의 손아귀에서 빠지려고 해도 키가 크고 신체가 우람진 리덕을 당해내지 못하였다는 관련 자료가 보인다. 상기 미국작가 해리슨 솔즈버리의 글에서 나오는 한단락이다. 리덕의 이 행동이 사실일수도 있지만 아무튼 리특은 조금 풀이 죽은것 같았다.

모택동은 내심하게 당면의 정치, 군사 정세를 분석하면서 우리 군은 북상하여야지 절대 남하해서는 안된다고 도리를 따져주었다. 그러면서 특별히 강조하는 말은 팽덕회였다. 전 홍군에서 이름 짜한 팽덕회군단장이 3군단을 거느리고 뒤에서 따르고있다. 팽덕회동지는 북상을 주장하며 남하를 견결히 반대한다. 그는 장국도동지의 남하에 대해 노기가 대단하다. 당신들 고려해보라. 당신들은 단결해야 한다. 홍군이 홍군과 싸우지 말아야 한다. 팽덕회, 팽덕회군단장이란 말에 제정신으로 돌아오는지 리특은 홍군에서의 팽덕회의 위망과 위인됨을 잘 알고있는데서 더는 경거망동하지 못하였다.

나중에 모택동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오직 북상만이 진정한 출로이고 유일정확한 선택이다. 나는 믿는다. 1년이 되지 않아 당신들은 꼭 북상하게 될것이다. 당신들이 남하하려 한다면 우리는 환송하려 한다. 우리는 앞에서 행군하면서 당신들에게 길을 열어주며 당신들이 뒤에서 오는것을 환영할것이다. 마지막 말을 모택동은 련속 세번이나 하시면서 깊은 인상을 남기였다. 그때의 특과퇀의 간부들은 모두 1방면군이지만 학원들은 거개가 4방면군 출신들이였다. 모택동 앞에서 어찌할수 없는 리특은 이번에는 딴전을 부렸다.

“장국도의 명령에 좇아 홍군학교의 학원들은 남하하여야 한다.”

“될수 있다. 홍군학교의 학원들은 돌아가서 4방면군을 따라 남하하라. 우리 특과퇀의 간부들은 북상하여야 한다.”

모택동의 대답은 그야말로 단호하였다. 그리곤 위국청, 송임궁, 양림을 보면서 특과퇀의 동지들을 집결시키라고 명령하였다. 모택동은 4방면군의 학원들에게 친절한 어조로 당면의 정치, 군사 정세를 분석해주는 한편 북상방침의 정확성을 천명하면서 남하하여서는 출로가 없다고 지적하였다. 강화를 끝낼 때 모택동은 반복적으로 강조하여 말했다.

“남하의 길은 통하지 않습니다. 당신들은 앞으로 꼭 북상하게 됩니다. 지금 돌아가도 괜찮습니다. 앞으로 또 돌아오게 됩니다. 당신들이 지금 돌아가면 우리는 환송합니다. 장래 돌아오면 우리는 환영합니다.”

결과 홍군대학의 4방면군 학원들 거개가 리특을 따라 돌아갔으나 공병과의 4방면군 학원들은 하나도 돌아가지 않았다. 그들은 “모주석을 따라 항일의 전선으로 가겠다!”, “모주석을 따라 나가며 죽어도 돌아서지 않겠다”고 분분히 표하면서 확고부동하게 북상항일의 길에 올랐다. 양림 등 특과퇀의 장령들에 대해서는 더 말치 않는다. 그들은 확고부동한 모택동의 전사들이였다.

4방면군 리특과 4방면군 학원들과 한 모택동의 말은 높이 서서 멀리 내다본 과학적인 예견이였다. 1935년 10월, 당중앙과 홍1방면군은 승리적으로 섬북에 이르러 1년간 2만 5000리를 걸어낸 장정을 승리적으로 끝냈고 그로부터 1년 뒤인 1936년 10월에는 감숙땅에서 홍1방면군, 홍2방면군, 홍4방면군의 위대한 회사를 이룩했다.

감숙땅에서의 홍군 3개 방면군의 회사를 두고 4방면군의 한 간부인 왕가선(王加善)은 탄복해마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있다. 홍1방면군이 당중앙, 모주석을 따라 계속 북상하면서 우리와 갈라질 때 모주석은 홍4방면군의 동지들과 ‘동지들 다시 만납시다!’ 하고 말씀하였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말해보았다. 하나는 북으로 움직이고 하나는 남으로 움직이며 엉덩이와 엉덩이를 맞대고있는데 어떻게 다시 만난단 말인가! 모주석은 또 1방면군의 동지들과 홍4방면군은 어느때든 돌아온다고 말씀했다. 그러나 그때 우리는 리해하지 못했다. 사실은 모주석께서 하신 말씀들이 모두 실현되였음을 증명하고있다.”

“이 팽덕회는 당신을 믿소”

모택동과 군위종대 그리고 홍4방면군 리특의 한갈래 추격부대, 이때의 팽덕회는 부근에서 고도의 긴장상태에 처해있었다. 모택동의 림기응변과 특유의 지혜, 군위종대의 위엄으로 리특의 추격부대를 돌려보내서야 한시름을 덜었다. 아니면 주위를 엄밀히 지켜선 홍3군단이 그자들을 순식간에 일망타진할 모든 준비가 되여있었다.

팽덕회는 1935년 6월, 사천 량하구회의후 이미 장국도를 당내와 홍군내 극히 위험한 인물로 점찍고 군단부 참모 무정 등과 시시각각 경계하면서 비밀리에 감시하고있었다. 초지에 들어설 때 팽덕회와 그가 지휘하는 홍3군단은 중앙종대와 우로군의 후위과업을 맡아나섰다. 다시 말하면 모택동과 주은래 등 당중앙과 중앙군위의 안전을 지켜선 후위부대였다. 모택동과 주은래 등이 위험해 보이는 어떤 구간을 지날 때면 팽덕회는 제일 뒤를 지켜선 후위퇀에 명령하여 위험구간 곳곳을 자세히 살피면서 경계하도록 하였다. 그 경계대상은 국민당군도 아닌 장국도의 제4방면군의 돌연습격을 막아나서는것이였다. 홍3군단 내에서 이 내막을 알고 앞뒤로 뛰여다니며 군단장의 지시를 전달하는 사람은 조선인 무정이였다. 무정은 홍3군단의 포병지휘관이요, 군단부의 참모였다.

우로군이 금방 초지를 지나 파서와 아서에 들어선후 팽덕회는 어쩐지 일이 상서롭지 못함을 직감하고 매일 전적총지휘부와 모택동 등 중앙지도자들 거처를 찾으며 사태의 발전에 예리한 눈길을 돌렸다. 옹근 7주야만에 천신만고로 금방 초지를 지나 숨도 바로 돌리지 못했는데 초지로 다시 돌아서야 한다는 말이 들리고 홍1방면군과 홍4방면군의 관계가 시원치가 못함이 뚜렷이 드러난다. 팽덕회는 군단부와 군단부 무정참모와 자기의 생각을 터놓더니 군단산하 제11퇀을 가만히 모택동주둔지 근처에 음페시켜 만일에 대처하도록 지시하였다. “팽덕회의 자술”에 나오는 팽덕회회고이다. 어떤 때는 무정을 보내기도 했다.

그래도 시름을 떨쳐버릴수가 없었다. 홍4방면군 지도자 장국도는 북상항일을 반대하고도 모자라 전체 1방면군도 자기의 지휘봉에 따라 움직이게 하고저 이미 군단과 군단, 군단과 군위, 모택동과의 모든 비밀무선전암호책을 거두어 들이지 않았는가. 홍1군단이 아계지구로 먼저 진출한후 팽덕회는 만일에 대비하여 즉각 군단참모 무정 등과 상의하고 극비밀리에 비밀무선전암호책을 달리 만들어두었었다. 이는 팽덕회와 무정 등 군단부 몇몇외 아는 사람이 없었다. 무정은 당과 홍군의 운명에 관계되는 관건적인 시각에 비밀무선전암호책 만들기에 참여한 조선인 홍군장령이였다.

팽덕회가 무정 등과 더불어 비밀무선전암호책을 만든데는 그로서의 생각이 따로 있었다. 팽덕회는 북상이냐, 남하냐가 백열화를 이루고있음을 언녕 알고 조치를 강구하기 시작한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유사시 함께 나서야 할 홍1군단과 련계를 가질수 없어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장국도는 초지에 들어서기전 로화(芦花)에서 군위 참모부의 명의로 군단과 군단을 이어주는 무선전암호를 거둬들였었다. 홍1군단과 홍3군단이 군위 모택동 등 지도자들과 련계하는 무선전암호도 거둬버렸으니 안하무인이 극도에 달하였다. 한데서 홍군 군단간에 서로 련계를 가질수가 없는 대신 홍군총사령부와 전적총지휘부만이 서로 통보할수 있을뿐이였다. 중앙의 지시도 마찬가지로 각 군단에 직접 전할수가 없었다.

현실이 그러하다. 지금 림표와 섭영진이 이끄는 아군의 전위부대ㅡ홍1군단은 초지 장정을 마치고 사천 파서에서 80여킬로메터 떨어진 감숙 아계(俄界, 오늘의 迭部县高吉村)에 앞서가 있었다. 하지만 장국도의 소행으로 서로간 무선전암호가 없는데서 중앙군위는 물론 홍3군단도 홍1군단과 련계를 가질수가 없었다. 팽덕회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무선전암호를 따로 만든것이 천만다행이였다. 9월 9일을 예견하기라도 한듯이 팽덕회는 파서 긴급회의 바로전에 다른 누구도 아닌 조선인 군단부참모 무정을 불렀다.

“당신이 한차례 특대 긴급과업을 수행해야겠소.”

“네? 혹시 장국도 그 사람 관련인가요?”

“그렇소. 장국도 일이 아니면 뭐겠소. 벌어지는 사태가 상서롭지 못하오. 중앙종대에는 1군단과 우리 3군단이 없어서는 안되니 당신이 빨리 앞서간 림표와 섭영진의 1군단을 찾아 우리가 만든 이 비밀무선전암호를 전해야겠소.”

“알겠습니다!”

무정의 대답은 언제 보나 홍군전사다운 기상으로 넘쳤다. 팽덕회는 무정의 어깨를 툭툭 쳤다.

“무정이, 이 팽덕회는 당신을 믿소. 당신이 나서면 시름이 놓인단 말이요. 그래도 어쩐지 마음이 무거우니 당신이 한개 반 전사들을 데리고 가도록 하오. 이는 중국공산당과 홍군의 운명에 관계되는 특대 대사요.”

“시름을 놓으십시오. 무정입니다.”

무정은 여느때처럼 군단장앞에서 자기의 가슴을 툭툭 쳤다. 팽덕회는 그러는 무정참모의 두손을 꽈악 잡아주었다. 조선인 홍군장령 무정에 대한 최대의 믿음과 바람이였다. 그는 누구보다도 무정을 잘 알고있었다. 무정이 군단부를 소리없이 나설 때 팽덕회는 이윽토록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지켜섰다. 그러는 군단장을 뒤에 남기고 무정은 9월 7일 깊은 밤인가 누구도 모르는 시각에 파서를 떠나 아계를 바라고 달렸다. 헤여지는 찰나 팽덕회군단장은 자기도 아계가 어디인지 모른다며 지남침 하나를 건네주었다.

팽덕회의 회고에 따르면 팽덕회가 비밀무선전암호를 준비하고 자기가 가장 믿는 참모 무정을 직접 파견한것은 홍1군단과의 련계를 회복하여 돌발사변을 방지하기 위한데 있었다. 팽덕회는 전적총지휘부와 중앙지도자 거처로 다니는 가운데서 진창호의 어조가 변한데 주의를 돌리게 되였다. 진창호의 말가운데서 “아파가 통, 남, 파(사천 동북)보다 더 좋다” (阿坝比通、南、巴-川东北-还好)는 말을 내뱉기도 했는데 현실을 정시한 팽덕회는 이는 틀림없이 장국도에게서 행동방침을 개변한다는 전보가 왔음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모택동의 거처로 가 진창호의 말뜻과 자기 생각을 터놓게 되였다. 이런 과정을 초지를 건너기전 로화에 머무를 때 장국도가 자기와의 담화에 이어보면 장국도가 자기의 우세한 병력을 턱대고 비렬한 음모수단으로 중앙과 엇서려 한것이였다. 팽덕회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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