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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을 위한 탈피와 갱신
2014년 《연변일보》 “해랑강” 문예부간 일별
날짜  2015-2-5 13:58:20   조회  925

1. 세우는 말

필자는 2014년 “해란강” 문예부간에 오른 작품들을 통독할수 있는 행운의 기회를 갖게 되면서 문예부간의 중요성과 가치에 대해 새로운 인식이 서게 되였다.

“해란강”에는 생각밖으로 건강하고 풍요롭고 우미한 작품들이 적지 않았다. 시 120여수, 수필 백여편, 소설 두편으로 꾸며진 2014년의 “해란강”은 과시 볼거리가 많았고 그만큼 읽는 재미도 넉넉했다. 어떤 글들은 우리 문단의 최상급작품이라고 할만큼 높은 수준이여서 경이로움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오로지 시와 수필만 가지고 론한다면 2014년의 “해란강” 하나만 가지고도 중국조선족의 시와 수필을 알기에 족하리라고 생각된다.

일부 작품들에서 탈변과 갱신의 숨결이 느껴지고있었다. 21세기는 종합예술의 시대로서 쟝르의 벽이 서서히 무너지고있으며 퓨전문학이 대두하고있다. “시의 산문화와 소설의 사소설화, 수필의 허구와 같은것이 전통적쟝르 해체의 구체적이 례가 된다. 함축과 상징의 구축물로 인지되는 시가 사설(辞说)을 도입하고 허구의 대표적인 문학으로 통념화되였던 소설이 수필과 그 차이를 확인할수 없으며 수필이 고정화관념을 깨고 상상력을 도입해 소설과 같은 인상을 느끼게 하여 관념의 벽이 존재하지 않는 시대라고 할수 있다.”(윤재천, 《수필론》, 27쪽)

지난해의 경우, 수필에서 퓨전문학의 숨결과 몸짓을 일부 읽어낼수 있었다. 아래에 시, 수필, 소설 등으로 분류하여 지난 해 “해란강”의 모습을 간단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2. 시―공생공존의 자유로운 “그라운드”

지난해 “해란강”이라는 그라운드에 나선 시인은 백여명을 웃돈다. 년령층도 다양하고 시 형식도 각양각색이였다. 60, 70, 80대가 있는가 하면 20대 30대도 있었고 현실주의시가 있었는가 하면 모더니즘계렬, 하이퍼시의 모습도 일부 들락거렸다. 공생공존, 상경상애(相敬相爱)의 모습으로 울긋불긋한 색조를 이룬 흥겨운 시의 잔치마당, 모든 시인들에게 설자리를 마련해주고 모든 문학사조를 아우르는 편집부의 아량과 배려가 엿보였다. 특히 70,80대의 시인들이 로익장의 기세로 자기만의 기치를 추켜들고 그라운드를 뛰여다니고있어 보기가 참 즐거웠다. 김철, 김응준, 김경석,강효삼, 김득만, 리근영, 김동진, 김기덕 등 70대, 80대들이 열성을 다해 자기의 재기를 과시하였다.

추억처럼 달이 뜨는/ 노을 젖은 저 언덕/ 가난을 붉은 노오란 찻잔속에/

녹쓴 바람이 분다

―김철 “산간마을” 일부, 《연변일보,》 12월 5일

근년에 로시인 김철은 황혼의 년륜과 고향의 그리움을 반죽하여 정겨우면서도 쓸쓸한 인생풍경을 감명 깊게 그려내고있다. 시인의 정열과 시심은 지금도 뜨겁게 타오르고있다. “산간마을”은 가슴 밑바닥까지 울리는 좋은 시로 되기에 손색이 없다.

강효삼은 병으로 시들시들 앓으면서도 “우리 문단의 제일푸닥거리군”답게 부지런히 싱싱한 시들을 많이 생산하고있다.

속살을 간질이며/ 엄지손가락 내 들고 칭찬하는/ 해살의 얇은 유혹 견디다 못해/ 그만 가슴을 활 열어준 겨울처녀/ 해살과 한데 뒹굴며 동침하더니/ 봄을 출산했네/ 찝찔한 양수를 쏟으며

―강효삼, “유혹” 일부, 《연변일보,》 2월 28일

강효삼의 시는 짙은 서정과 시원한 맛으로 인기를 끌면서 현실주의시의 존재확립에 큰 기여를 하고있다.

“해란강”은 민족전통의 맥을 잇는 작업에서도 게을리 하지 않아 시조에도 방석을 마련해 주었다. 그중 한수만 살펴본다.

가느다랗고 여린것이/ 얽히여서 얼크렁/ 차분히 닿은것이/ 서로 만나 실크렁/ 비밀문/ 고웁게 살짝/ 더듬어 웃는 손

―김학송 “뿌리”,《연변일보》, 10월 10일

“해란강”은 새로운 시도를 한 시들에게도 은혜를 베풀고있다.

거울쪼각들이/ 가슴에 옥토끼를 품고 정사하다/ 쪼각달의 배가 나날이 불어난다

―방순애, “다락밭” 일부, 《연변일보》, 4월 18일

“다락밭”은 사실주의와 하이퍼시의 접목을 시도한 시로 보여진다.

지난해에 “해란강”이 마련한 시의 그라운드에서 가장 많이 가장 열심히 뛰여다닌 사람들로 김기덕, 허창렬, 최화길,전광덕을 꼽을수 있다. 그들의 끈질기고 치렬한 문학정신은 그에 따르는 성취를 안아왔다. 간단한 살핌을 해본다.

김기덕의 대부분 시가 고향과 끈끈히 이어져있으며 흙냄새가 물씬 풍긴다. 삽, 호미, 쇠스랑 등이 김기덕의 손을 거치면 구수한 시로 탈바꿈한다. 필자는 김기덕을 땅의 시인, 흙의 시인이라고 일컬으고 싶다.

고향을 기억속에 꾹 눌러놓고/ 이역땅 오솔길을 한삽 파보았다/ 흙속에 잠든 할아버지 그 시절/ 푸르게 새겨나오며 껄껄거리신다

―김기덕, “삽” 일부, 《연변일보》, 6월 6일

허창렬의 시들은 우리 시에서 흔치 않은 유머가 있어 색다른 감이 난다. 그의 시풍은 현실주의시와 초현실주의 융합이다.

궁색하게 방구석에 처박혀있던/ 빈 술병들이 어느새/ 줄레줄레 긴 기지개를 켠다/ “물―을 ―물…”/ 구들목에 꼬꾸라졌던 산송장이/ 벌써 두번재로 앙상한 손을/ 공중에서 파리 쫓듯이 휘저어대고있다

―허창렬, “물이 되려는 여자”, 《연변일보》, 6월 20일

시인은 빈 술병에 유머의 입김을 불어넣어 생동한 이미지를 창출하고있다.

여태껏 많은 서정시를 써온 최화길의 시의 뿌리는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사랑이다. 최화길에게 있어서 사랑은 지고무상의 힘이며 등대이며 영원히 륜회하는 삶의 리치이다.

세월을 밝히는 빛나는 등대/ 오직 시작일뿐 끝이 없다./ 륜회하는 전설, 무적의 동그라미

―최화길, “사랑, 무적의 힘” 《연변일보》, 9월 5일

전광덕의 시는 기본상 현실주의에 기대고있다. “마을길에서”는 우리가 이미 다 알고있는 조선족시골의 피페상을 고발하고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가 우리의 눈길을 끄는 까닭은 시속에 슬프도록 아름다운 감동이 차분하게 깔려있기때문이다.

굽은 허리 의지한/ 대여섯 지팽이/ 땅 꺼지는 한숨에 떠는데/ 목에 걸린 손전화만 흐느끼며/ 소망을 애절히 기다린다

―전광덕, “마을길에세” 일부, 《연변일보》, 5월 30일

전광덕은 많은 시를 창작했지만 우와 같은 멋진 시구들이 많지 못해 아쉽다.

지난해의 시들중에서 필자의 눈에 가장 예쁘고 사랑스럽게 보인 시가 정소의 “봄”이다. 시인은 생명탄생의 신비와 생의 희열을 “봄”에 다져놓고 아지랑이 같은 목소리로 생명의 찬가를 부르고있다.

너 오는구나/ 겨우내 어디서 뭘 하나 했더니/ 결국은 그 일을 해내고 오는구나/ 랭기 가득찬 하늘이불밑에서/ 겨울나그네의 애기를 배고서/ 아무 일도 없는듯이 오는구나

―정소 “봄” 첫 련, 《연변일보》, 3월 28일

“봄”이 비단 겨울나그네와 몸을 섞을뿐 아니라 “나”하고도 동침을 한다.

그녀는 해마다 한번씩 나에게로 온다/ 학교 잘 가는 개근생처럼 와서는/ 꼭 나를 껴안고 두터운 등산복지퍼부터 벗긴다

―정소, “춘녀” 첫 련, 《연변일보》, 3월 28일

자연과 인간이 일심동체가 되여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킨다. 그 새로운 생명이 바로 순결이요, 맑음이다. 즉 새로운 인간의 탄생이다.

그 다음 터스처단추를 벗겨내고는/ 나의 때 묻은 심장을 꺼내서/ 몽롱한 안개강에 훌훌 헹군다

―정서 “춘녀” 일부, 《연변일보》, 3월 29일)

시인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마음도 봄처럼 맑고 깨끗하고 순결해야 한다는 도리를 시화하고있다. 신선한 상상과 깊은 철리를 유머에 반죽하여 독자를 유인하는 시인의 기교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2014년에 발표된 우리의 시들은 대체적으로 관찮다고 말할수 있다. 그러나 이전과 비교할 때 큰 차이점은 보이지 않는다. 소설과 수필에 비해 갱신을 거듭하면서 빠르게 발전한 시는 지금 한계점에 도달한듯 싶다. 새로운 뜀질이 요청된다. 이제껏 쇠뇌되여왔던 시의 관념에서부터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소설적인 시, 수필적인 시, 동화적인 시도 생각해 보아야 할것이다. 탈변과 갱신을 꾀하는 일부 시인들이 바야흐로 도전을 하고있어 조만간 우리 시가 다시한번 때뻣이를 할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3. 소설―랭정한 촉수로 쌓아올린 비극의 미학

지난해에 “해란강”은 두편의 소설 “마가네 형제와 둘째누나”(류정남, 《연변일보》,11월 22일)와 “크르노수의 시간”(환지, 《연변일보》, 2월 14일)을 실었다. 비극적주제를 다루고있는 두 소설은 무게감이 있었다. “크르노수의 시간”은 주로 아내의 기편과 불륜으로 구휴안이라는 남자가 평생 꿈구던 자신의 유토피아, 그리스로 가려던 꿈을 이루지 못하고 허망하게 일생을 마치는 과정을 다루고있다.

“마가네 형제와 둘째누나”도 한 가정의 비극을 쓰고있다. 하지만 단순히 거기에 머무르고마는것이 아니라 민족공동체의 붕궤와 민족동화에로 이어지고있다. 그리고 상징적기법, 랭철한 시각, 언어조탁 등에서 선명한 특징을 갖고있다.

이 소설은 랭정하고 차분한 시각으로 산업화와 물질문명의 뒤면에 가리워진 민족공동체의 어두운 그림자를 그려보이고있다. 자기 집의 이야기를 쓰고있지만 마치 자기와는 전혀 무관하듯 한쪽에 비켜서서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를 한다. 우리들은 오래전부터 민족공동체의 운명에 대해 크게 걱정하여왔다. 헌데 그런 걱정이 이젠 걱정을 넘어 현실로 치닫고있다. 력사는 무정하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아랑곳하지 않고 줄것은 주고 빼앗을것은 빼앗는다. 농촌의 경우 오늘 공동체의 붕괴가 급물살을 타고있다. 물질적부를 이룩한 반면에 정신적붕괴와 더불어 삶의 터전을 잃어가고있다. 초기에는 지성인들과 작가들이 민족공동체의 위기를 두고 열띤 말들을 무성하게 쏟아냈으나 정작 현실로 되여 눈앞에 닥치고보니 이젠 심드렁해진듯 싶다. 올것이 왔으니 이제 떠든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는 태도인것 같다. 우리에게는 심각한 고뇌가 필요하다. 조선족사회 특히 조선족농촌은 외국나들이로 물질적부를 창출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신적공허와 함께 삶의 터전을 잃어가고있다.

지난세기 90년대초반까지만 해도 조선족시골은 살멋이 있었다. 늙은이, 젊은이, 처녀 ,총각, 어린이, 학교, 인정 등 있을것이 다 있어 가난하기는 했어도 오손도손 재미있게 살았다. “마가네 형제와 둘째누나”는 이런 오붓하던 마을이 어떻게 황페화의 길로 치닫고있는가를 목격자의 신분으로 담담하게 엮고있다. 작자가 세상을 보는 시각이 자못 랭정하고 객관적이다.작자는 비극의 원인을 어느 일방이 아니라 외부요소(객관)와 내부요소 (자작지얼, 自作自孽)의 결합에 의해 산생한것이라고 보고있다.

객관적으로 볼 때 비극은 “고속철도”에서 잉태된다. “고속철도가 이 산골동네까지 뻗어지나간다는 소문이 돌자 거무칙칙한 마가네형제가 이사왔다. 소문에 구간 철도부설을 도맡은 청부업자가 바로 마가네 먼 친척이 된다고들 했다.”마가네형제들은 고속철도를 놓아주는 사람이 마치도 마가네형제들이기라도 한듯 시뚝한다. “얼마 안 지나 이 동네에서 처음으로 커다란 벽돌집을 덩실하니 일떠세웠고 집주위의 사면에 검은색 페인트칠을 진하게 올린 커다란 대문까지 어마어마하게 세워놓았다.” 이 묘사는 권력과 재부의 압축이다. 한족들은 예로부터 사둔의 팔촌이 벼슬을 해도 괜히 으스대며 곁사람들은 그런 당사자를 부러워하다. 수천년간 이어온 이런 페단이 오늘까지 이어지면서 부정부패라는 암을 증식시키고있다. 그러나 소설에서 마가네형제가 무력으로 동네를 잠식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근면으로 부를 창조한다. 마을토배기들에 비하면 황소 같은 마가네형제들은 일도 잘한다. 산골동네를 떠나면서 버린 숱한 밭을 차지하고 “남들이 거들떠도 안 보던 황페한 습지와 억새판이라도 흙으로 메우고 뜨락또르로 갈아엎어서는 새 논으로 푼다. 마가네형제들이 일하는것을 보면 마치도 굶주린 승냥이떼들이 커다란 고기덩이에 덮치듯했다.” 이뿐만 아니라 마가네형제들은 마을사람들에게 인정도 많이 베풀어주고 딱한 사람들의 사정도 잘 봐준다. 이래서 마을사람들이 마가네형제를 좋아하게 되고 둘째누나도 옥수수밭에서 마가네씨종자를 받게 되는것이다.

마가네는 급속이 마을의 지주로 부상한다. 남편한테서 배신을 받은 둘째누나는 결국 마가네 맏이한테 시집가 귀부인으로 변신하고 떡돌 같은 쌍둥이 남자애를 낳은 덕분에 온 집안을 쥐고 흔든다.

고속도로(현대문명)가 마가네를 불러들였고 산업화의 조류에 휩쓸며 조선족들이 타지로, 외국으로 흘러나갔고 그 대가로 돈을 벌었다. 하지만 땅은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갔고 민족공동체는 엄중하게 허물이지고있다. 작가는 비극의 원인을 객관에서만 찾는것이 아니라 자기 가정과 마을사람들한테서도 찾고있다. 즉 자작지얼이라고 보고있다. 일을 싫어하는 셋째누나, 외국에 가서 방탕한 생활을 한 둘째매부, 한국에 시집갔다가 망한 큰 누나, 남편의 배신에 앙심을 먹고 마씨네집으로 시집간 둘째누나, 땅을 버리고 간 마을사람들, 이런 여러가지 요소가 결합되여 조선족농촌이 파산의 일로를 걷는것이다.

이 소설에 아주 의미심장한 구절이 있다. “몇해후 둘째누나의 말대로 우리 집 원 터에다 새로 벽돌집을 짓기 시작했는데 그동안 많이 커 버린 내 외조카 둘은… 나보고 외삼촌이라고 부르면서 땅먹기놀음을 하자고 성화질이였다. 이럴 때면 아직까지도 정신이 맑은 마가네할아버지와 인젠 얼굴의 주근깨까지 싹 없어지고 보동보동 살이 오른 둘째누나는 애들의 놀음을 대견스레 지켜보면서 흐뭇이 웃군 하였다.” 민족동화의 위험성을 암시한 말인것 같은데 구체적인 해석은 독자의 몫으로 남긴다.

작가는 작품에서 중풍으로 앓다가 죽은 아버지와 아직까지도 정정한 마가네할아버지를 살짝 내비침으로써 한쪽의 흥(兴)과 다른 한쪽의 망(亡)을 선명히 대조시키고있다.

이 작품에는 세 곳에서 고속철도를 언급하고있다. 첫 부분에 고속철도를 놓을것이라는 소문을 쓰고 아버지가 죽을 때 “몇년후면 여기두 고속철도 통하겠는데…”라고 엉뚱한 소리를 하고 소설의 결미를 다음과 같이 쓰고있다.

“그리고 이듬해 이른봄부터는 정말로 고속철도가 이 산골동네를 통한다고 온동네 사람 모두들 크게 흥분하고있있었다.”

“고속철도”는 긴 사색과 음미를 유도하는 하나의 예술장치로 보아야 할것이다.

“마가네 형제와 둘째누나”는 확실히 빼여난 성공작이다.

4. 수필―탈변과 갱신의 몸짓

지난해 “해란강”의 글농사에서 수필이 수확이 가장 많았다. 무성한 수필의 숲을 보니 마치 수필의 르네상스시대를 맞는 기분이라고 할가. 기타 쟝르에 비해 량적으로 많았고 질적으로도 높았다. 일상 삶을 걸러냄이 없이 그대로 서술하는 회억형, 추억형의 전통수필도 적지 않았지만 새로운 시도를 하는 수필들도 꽤 되였다. 수필문학은 가타 쟝르에 비해 발전력사가 짧기에 그만큼 발전가능성도 크게 열려있다. 한국의 리어령평론가는 “21세기는 수필의 시대”라고 말한바 있고 어떤이는 “한국에서 노벨상을 탄다면 바로 에세이에서 나올것”이라고 예언하기도 하였다. 그만큼 수필문학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지난해에 최균선, 구용기, 류서연, 김정권, 정호원, 한세준, 야조 등 분들이 좋은 수필들을 선보였다.

구용기는 15편의 미니수필로 시선을 끌었다. 그의 수필은 차집에서 친구와 마주앉아 차잔에다 정을 채우는 글이며 허심탄회하게 무릎을 마주대고 즐겁게 네 허물 내 허물은 나누는 글이다. 그의 글은 형용사가 없고 미사려구가 없으며 자신을 내비치려는 헛동작이 없다. 만나면 반가운 사람이 있고 만나면 고통스러운 사람도 있고 인연을 한번 맺으면 두고두고 행운이 되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구용기는 자아성찰을 주축으로 이 모든것들을 아우른다. 나의 몸, 너의 몸에서 좋은 점, 허물까지 캐내여 삶의 의미망을 수놓는 사람이 바로 구용기이다. “순진한 마음으로 계산도 없이 엄벙덤벙하는 허점으로 펼쳐진 바람벽에 친구들 이름으로 오손도손 붙어있는것 같다.”(“사람의 빈 구석에 애정이 부착한다”, 《연변일보》, 8월 29일) 별게 철학안가. 이런것이 곧 철학이다. 한마디로 그의 수필은 일기로 쓰는 철학이다.

최균선은 2014년에 “해란강”에 5편의 수필을 발표하여 수필가의 저력을 남김없이 과시하였다. 글을 많이 쓴다는것과 잘 쓰는것과는 다른 개념이다. 최균선을 주목하게 되는것은 그가 새로운 형식을 추구하고있고 또 성공하고있기때문이다. 그는 작년에 두편의 의론성수필(혹은 평론성 수필)을 발표하였다. 한편만 이야기에 올려본다. “빛과 그림자와 그늘”(《연변일보》, 3월 7일)은 의론성수필이다. 작자는 해박한 지식과 예리한 통찰력으로 “빛”과 “그림자”와 “그늘”의 유기적관계를 빈틈없이 론증하다가 나중에 독자들에게 “그림자는 스스로 존재하지 못하는 허상이면서 무와 유의 경계선에서 존재한다. 그런데 무는 만물이 끝이 아니라 출발점이다. 날마다 빈것에서 출발하여 빛을 채워간다면 그것은 인생을 사는 지혜를 터득한것이다.”라는 그늘의 미학을 선물한다.

“꽃과 바람과 나비와 인생”(야조, 《연변일보》, 8월 15일)도 잘 만들어진 글이다. 작자는 자연계의 신비하고 오묘한 상호의존의 생존원리로부터 인간의 공생공존을 권유하고있다.

정호원의 “길의 훔친 길”(《연변일보》, 12월 19일), 한세준의 “겨울나무를 읊다”(《연변일보》, 2월 28일)도 수작으로 보이는 의론성수필이다. “길의 훔친 길”은 우선 표제부터가 신선하고 사색적이다. 작자는 길을 생의 목표나 행위에 견주고있다. “다른 길을 하나하나 훔쳐다가 내 길의 건널목에 접목시키고”, “바줄처럼 실하게 꼬아 가면서 실천의 길깁기”를 하는 작자의 행위는 독자들에게 시사하는바가 크다. “겨울나무를 읊다”에서 작자는 유연함에서 강함을 발견하고 자기를 내 세우지 않는 자연에서 우주의 진리와 자연의 섭리를 발견하고 기꺼워하며 나중에는 살아있는 자체가 희열이라는 락관적인 삶을 도출해낸다.

의론성수필은 쉽게 씌여지는것이 아니다. 연박한 지식과 함께 세상을 꿰뚫는 예리한 시각이 갖추어져야 한다.

지난해의 시적수필도 몇편 얼굴을 내밀어 수필문학의 다양성과 형식갱신에 큰 공헌을 하였다.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김정권의 “북대시장거리”(《연변일보》, 10월 17일)이다.

“북대시장거리”를 “시+유머+삶의 마당”이라고 말하고싶다. 작자는 인간의 소통과 정을 파고 사는 재래시장을 노래하고갔다. 글은 시적이면서도 아주 유모적이고 해학적이라는데서 큰 점수를 따내고있다. 김정권은 능청스러운 사람이다. 그는 한 눈을 찔끔 감고 능글맞은 해학과 유머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던져준다. “이쯤되면 조산한 아기머리통 같은 올감자들이 양수에 씻기운듯 한 몸뚱이를 그대로 드러내고 사그러져가는 해살에 눈을 뜨지 못한다. 그러다 겨우 눈을 뜨고는 (저것들이 다 우리를 삶아먹는 식충인가?) 하다 어느덧 짧은 치마를 입고 마주앉은 녀자들을 은근히 살피다가 주인의 손에 덥석 잡히운다.”, “줄무늬 선명한 사각팬티와 꽃무늬가 아롱다롱한 삼각팬티가 누가 들을세라 서로 딱 붙어서서 귀속말로 도란도란 은밀하게 밀담을 주고밭는다.”, “복근이 굉장히 좋은 알몽뚱이와 쭉쭉빵빵하게 섹시한 녀자가 남이야 보든 말든 정담을 나누는데 건너편 삶은 돼지대가리가 다 허구프게 웃으면서 차마 보기 무안하던지 두 눈을 지긋이 감아버린다.”우리 문학에 해학과 유머 아이러니가 매우 빈곤하데 그 빈곤을 메우는 작업에서 김정권이 공을 세우고있다.

리기춘의 “여름련정”(《연변일보》, 7월 11일)도 시적수필이다 시적이라는 점에서는 오히려 “북대시장거리”를 릉가한다. “천만줄기 금실 같은 해살이 만천하에 억수로 쏟아지니 푸름으로 짙어가는 계절이 세월을 뜨끈뜨끈 누비여가고있습니다.” 허나 깊은 리치를 파헤치는 작업에서 좀 거리가 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을 준다.

5. 눕히는 말

좋은 글을 쓰느라고 로고가 많으신 여러 작가들에게 한 독자로서 고마움과 감사를 드리며 한편  부탁도 곁드린다.

우에서도 간단히 언급했지만 21세기는 퓨전문학의 시대이다. 고정관념의 벽을 넘어 각 쟝르가 자유롭게 어울러야 한다. 시적소설, 소설적시, 시적수필, 의론적수필, 수필적시, 평론적소설… 등등 새로운 형식이 등장해야 한다. 문학평론도 새로운 방법론과 형식이 등장해야 한다. 다음으로 우리 문학은 비평의식이 빈곤하고 창백한것 같다. 우리의 문학이 비판의식을 갖추지 않으면 아니될 까닭은 오늘 진 지구에서 생태위기, 전쟁, 테러, 학살, 강간, 마약, 빈부격차, 관료들의 부정부패 등 헤아릴수 없는 암덩어리들이 인간을 죽이고 시시각가 인류의 삶을 놈 먹고 평화를 위협하고있기때문이다. 이런 현실에서 비판을 외면한다는것은 어찌보면 작가적소명에 루를 끼치는 일이 아닐가고 생각해본다.

김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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