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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있는 인생은 늙지 않는다
□강소영
날짜  2017-1-5 14:22:19   조회  431
이십대의 마지막 겨울이 지나고있다. 지극히 사랑했던 련인과 리별을 해야만 하는 기분처럼 심란하고 착잡하다. 이십대가 청춘이라면 래년이면 나는 청춘과 세이(Say) 굿바이를 해야 한다. 사실 청춘이든, 중년이든, 스물아홉의 마지막 날이든, 서른살의 첫날이든 일상은 크게 다를리 없건만 한가지 확실한것은 내가 조금씩 달라지고있다는것이다. 매일 같은 날을 살아도 매일 같은 길을 지나도 언제나 같은 하루가 아니고 올해의 여름이 작년의 여름이 아닌것처럼 오늘의 나도 분명 어제의 나는 아닐것이다. 그렇게 락수물이 바위돌을 뚫듯이 이십대의 십년 동안에 야금야금 일어난 작은 변화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 수많은 변화들중에서 내 인생을 송두리채 바꾼 변화가 있었다.

지루한 십대에서 성인의 문턱을 넘으면서 나는 간섭과 구속에서 해방되여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거칠것 없는 대학생활을 즐겼다. 그때는 가진건 쥐뿔도 없어도 무념무상한 매일매일이 마냥 좋았다. 다른 친구들은 진학해서부터 스펙 쌓기에 공무원, 대학원 시험준비, 취업준비를 하느라고 도서관에서, 현장에서 몸을 내던지며 뒹굴고있는데 천성이 태평인 나는 “나중에 뭘 먹고 살아야 하나” 하는 진로에 대한 일말의 걱정 같은것도 념두에 둔적이 없었다. 도대체 뭘 위해서 아등바등 애쓰는지 그저 물이 흐르는대로 바람이 부는대로 몸을 맡기고 살면 되지 하면서 속 편한 궁리만 했다.

막상 졸업을 하게 됐을 때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막막하기만 했다. 그제서야 현실의 벽을 체감하며 내적고민과 갈등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다들 착실하게 닦아놓은 계단을 따라 차근차근 걸음을 옮기고있을 때 나는 한발자국만 내디디면 벼랑의 끝일것처럼 불안하고 두려웠다. 무엇보다도 내가 취업이니 진로니 하는 급류에 휩쓸려 다니지 않은것은 전적으로 마음이 딴데 가있었기때문이였다.

세상만사에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내가 유일하게 눈에 섬광이 번뜩이는것이 있었다. 애인 없인 살아도 그것 없이는 못 살았다. 나를 그토록 열광하게 만든것은 다름 아닌 문학이였다. 문학으로 세상과 소통하겠다는 다부진 꿈을 꾸었고 외로운 세상에서 홀로 허둥거릴 때 위로를 준것도 문학이였다.

사실 대학입학원서를 쓸 때도 나에게는 꿈을 펼칠 기회가 있었다. 그렇지만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집요한 권유에 취업이 빵빵하다는 전공을 선택하면서 비겁하게 현실에 주저앉고말았다. 그럼에도 졸업을 앞두고 그때와 똑같은, 소위 데자뷰를 겪고있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해보아도 과거의 상황과 판에 박은듯한 일색의 답변들뿐이였다.

“사람은 원하는대로만 살기 힘들다.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수 없이 적성에 안 맞는 일도 참고 한다.”

그렇게 현실의 족쇄는 번번이 나의 몸을 가두고 발목을 붙들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것처럼 부모님이 등 떠미는대로 나에게 손짓하는 금융기관에 취직을 하면 그만이였지만 아무리 직장이 탄탄하다 해도 평생을 재미없는 일을 하면서 령혼을 갉아먹는다는것은 생각만 해도 진저리가 났고 자신이 없었다.

나는 허송세월로 흘려보낸 4년을 돌이켜보았다. 꿈을 외면해야만 했던 시간속에서 나는 살아있다기보단 그저 나무처럼 돌처럼 존재하는것에 불과했다. 꿈의 세계에서 팍팍하고 메마른 현실세계로 류배당한 사람이라고 체념을 하면서 말이다. 그 과정에 내 마음속에 싹트는 하나의 메시지가 있었다. 행복을 찾기 위해선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나의 의지로 내 스스로의 길을 가야 한다는것을, 누군가에게 저당 잡힌 인생은 자신을 불태울만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것을 나는 서서히 깨닫게 되였다.

그동안 내 길이 아닌 다른 길에서 잠간 헤맸지만 이제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야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앞이 훤해지고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듯 후련했다. 이제부터라도 가슴을 뜨겁게 달구는 무언가를 위해 살고싶었다. 물론 아무도 동의하지 않았지만 꼭두각시노릇에 신물이 났으므로 나를 막을수 있는것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삶의 운전대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틀었다.

그해 대학원 입학원서에 한치의 주저 없이 조선어문전공을 적어넣었다. 그 선택으로 20대의 절반을 바쳤던 대학생활이 종이 한장의 추억이 되여버렸다. 과연 옳은 선택인지 확신할수 없었지만 나는 달라지고싶었다. 지금보다 나아질거라는 보장도 없었고 예견할수 없는 미래도 불안했지만 지금 이대로, 아무런 저항 없이 살기는 죽기보다 싫었다.

그후로 5년 뒤, 이십대의 끝자락에 서있는 지금, 나는 출판사 편집자가 되였다. 회계사, 세무사가 될수도 있었지만 청춘을 바쳐가며 돌고 돌아 간신히 이 자리까지 도착했다. 결국 글밥을 먹을거면서 시간을 허비하고 몸을 혹사시킨, 내 꿈을 가로막은 몹쓸 안개는 대체 무엇이였을가?

답은 하나였다. 내가 아무 일에도 도전하지 못했던 리유는 인생을 바꿀 용기가 없었기때문이였다. 부모님이 차려준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는 안일한 생활에 길들여져서 스스로의 의지로 운명을 결정하고 인생을 바꾼다는것이 망망대해에 홀로 버려지는것처럼 두려웠다. 지금 상황이 마음에 드는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막상 상황밖으로 과감히 뛰쳐나갈 배짱도 없었다. 속으로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며 끊임없이 투덜거리고 불안해하다가 나는 결국 우유부단하고 소극적인 불평쟁이가 되여버렸다. 주위 사람들이 정답으로 합의된 가치관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기대치에 내 인생을 맞추느라 점점 자신을 잃어갔다.

내가 쉽사리 용기를 낼수 없었던데는 내 능력에 대한 회의와 불신이 원인이기도 했다. “문학이란 거룩하고 신성한 세계에 내가 뿌리 내릴수 있을가” 하는 망설임과 의심이 가득한 질문으로 자신에게 한계를 만들었다. 내 안에 있는 가능성을 좁은 상자안에 닫아두고 새로운 도전에 대한 의혹과 불안만 키웠다. 그나마 웅켜쥔 알량한 행복마저 잃을가봐 전전긍긍하면서 제대로 시도조차 않고 제자리걸음만 해왔다.

그러나 애초부터 꿈이란 옳고그름을 따질수 있는것이 아니였다. 꿈을 이루는데는 특별한 재능이 있느냐보다 진짜 열정이 있느냐가 더 중요했다. 타고난 사람은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수 없다. 래일은 오는것이 아니라 만드는것이다. 나는 “할수 있을가”로 자신을 고문하고 괴롭히면서 한번도 “어떻게 할가” 하는 실행에 옮기기 위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제대로 부딪쳐보아야 성취할 가능성도 생기는데 나는 머뭇거리고 주저하다가 번번이 기회를 놓쳤다.

인생은 짧다. 짧은 인생에서 이십대의 십년은 더 짧다. 그 십년을 전부 자기안의 뜨거운 꿈을 위해 살아도 아쉬운 판에 고작 주위의 평판따위에, 경제적리득따위에 목숨 걸고 살았던 시절이 열병이 지나고 남은 상처처럼 가끔씩 아려온다. 그래도 나의 이십대는 흔들렸지만 아름다왔고 시작은 미비했지만 이윽고 피여났다. 재미있는 드라마에는 늘 반전이 있듯이 나는 내 삶에 경이로운 반전을 이루어냈다.

단언컨대 서른이 되여도 삶은 쉬워지지 않는다. 좌충우돌 실수투성이이고 여전히 일에 치이고 사람에 부대끼고 생활에 쫓기면서 살것이다. 한치앞을 내다볼수 없는 미래에 나는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에서 죽고 태여나고를 거듭 반복하겠지.

하지만 이제는 끊임없이 부딪치는 일상사에 나만의 정답을 안고, 나만의 리듬으로 나의 사상과 나의 존재를 다스릴것이다. 내가 가장 하고싶은 일, 잘할수 있는 일을 원없이 하면서 가슴 떨리는 불안을 연료로 치렬하게 꿋꿋하게 꿈이라는 피라미드의 정상을 향해 등반하겠다. 그리고 내 나이 앞자리에 어떤 수자가 되든 이십대의 열정이 꿈틀대는 그런 싱그러운 삶을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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