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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술나무와 할아버지
□허성운
날짜  2017-1-12 15:09:57   조회  415
천년 묵은 비술나무아래 할아버지 한분이 쪼그리고 앉아 고개 숙인 소한테 애처로운 눈빛으로 말을 건다. 수레짐에 축 늘어진 소나 그 소에게 말을 거는 할아버지나 세상무게에 짓눌리여 있는건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옆에 모진 풍상을 견뎌오며 구새 먹은 텅 빈 속을 한겹한겹 덮어가는 비술나무도 거기에 못지 않다. 상처 많은 할아버지 삶처럼 나무밑둥에 바위돌만한 혹들이 돋아나있고 곁껍질이 벗겨진 나무줄기에 그 옛날 홍역에 시달리였던 사람들의 수두흉터처럼 벌레자국이 움푹움푹 패여들어가 있다.

예전에 마을사람들은 비술나무아래 주위를 땅낭거리라 불러왔다. 잘게 썬 짚을 진흙과 버무려 군데군데 돌을 박아 담을 쌓았던 토담과 정성껏 엮어놓은 수수바자를 굽이돌아 지나면 땅낭거리가 나타난다. 비물에 촉촉이 젖은 흙냄새와 파르르 물기가 오른 잎새의 싱그러움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아래에서 장기도 두고 농사이야기도 하게 만들었으며 동네잔치도 벌이게도 하였다. 담배모를 할 때나 김 맬 때 잠시나마 그늘을 찾아 꿀잠을 즐기게 하고 아이들도 학교에서 돌아와 심심할 때면 그네를 뛰거나 잠자리를 잡으며 놀게 하던, 풋풋한 정을 들게 만들던 비술나무였다.

바람 잘날 없는 그 세월속에 크고작은 가지가 부러지는 수난을 겪으며 비술나무는 거대한 우산처럼 마을을 포근히 감싸주었다. 마을쪽으로 뻗은 커다란 비술나무가지 한개는 땅에 닿아 뿌리를 내릴 정도로 휘늘어졌다. 올망졸망 늘어선 초가집들을 거느리고 마을 언덕우에 버팀목처럼 꿋꿋하게 서있는 비술나무는 말그대로 고색창연한 느낌과 은은한 운치를 풍기여왔었다.

지금에 와서 늙은 비술나무는 해가 다르게 잎이 듬성듬성해지여 가려주는 해빛보다 놓치는 해빛이 더 많다. 그밑에서 그네 뛰며 까르르 웃던 계집애들은 도시로 시집 간지도 오래고 광목천을 쏙쇄(샅바)로 묶어 씨름하던 사내애들은 하나둘씩 타국으로 돈 벌러 자리를 뜬지도 어언 20년이란 세월이 훌쩍 넘어갔다. 땅낭거리에서 내려다보면 동네골목 사이사이로 펼쳐진 마을길은 비술나무껍질처럼 갈라터진 할아버지의 거칠고 투박한 손바닥에 난 손금같이 얼기고 설기여 이젠 쉽사리 가늠하기조차도 어려워진다.

봄볕은 우듬지끝에서 타래 치며 내려오는 나무의 잔주름을 타고 아름드리 실한 몸통에 이르러 밭고랑처럼 깊게 팬 여러 갈래의 나무주름골로 뻗어내린다. 한평생 흙과 씨름하면 자란 할아버지의 젊은 나날의 꿈틀거리는 근육처럼 비술나무의 뿌리줄기는 땅우에 불근불근 솟아나왔다가 다시 흙속에 숨어들며 사방으로 펴지어 뻗어나간다.

땅낭거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할아버지네 조상의 산소가 있다. 그 산에는 할아버지네 조상뿐만아니라 다른 집안 어른들의 묘소도 여럿 있다. 그가운데는 봉분이 가라앉은, 성묘한지도 퍼그나 오래된 묘지도 눈에 띄다. 청명날만 오면 할아버지는 손자놈의 손을 끌고 성묘길에 나선다. 묘소마다 누가 누워있고 너희와 어떤 관계라는 설명을 장황하게 해주나 어린 손자는 그 말씀이 아직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시골의 겨울은 유난히도 길고 스산하지만 어느새 볼품없는 담밑으로 따스한 봄볕이 비스듬히 찾아든다. 3년이 지난뒤 내가 이곳을 찾아왔을 때에는 이미 할아버지가 세상을 뜬뒤였다. 가위질에 서투른 어린 아이 손으로 아무렇게나 오려낸 종이조각마냥 여기저기 잘려나간 추억들만 무심한 세월속에 흩날리고있었다. 수명을 다한 비술나무아래에서 어슬렁거리며 오던 강아지 한마리가 주인을 닮아서인지 그저 순한 눈빛으로 낮선 길손을 만나 오던 길을 되돌아선다. 그옆에 깨여진 술기(수레)바퀴 한조각이 음달진 땅바닥에 누구도 거들떠보지도 않은채로 누워있다. 생전에 할아버지는 비술나무로 술기타리와 바퀴살을 만들어왔다. 경운기가 나오기전까지만 해도 할아버지가 만든 술기는 동네 숱한 사연을 가득 싣고 다녔다. 가을이면 하늘높이 곡식단을 싣고 언덕길을 굴러다녔고 겨울이면 석탄 팔러 고개 넘어 삐거덕거리며 멀리 시내까지 돌아다녔다. 장날이면 동네 짐보따리를 다 싣고 공사 마을장터까지 갔었고 학교로 오가는 애들을 술기에 태워 강물을 건네주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하면 긴 세월동안 할아버지는 고단한 삶의 흔적을 비술나무에 고스란히 새기여왔다. 나날이 텅텅 비여가는 마을에서 할아버지는 좋은 일, 궂은일 가릴것 없이 도맡아 해오면서 비술나무처럼 마을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여왔었다. 이제 땅낭거리 한쪽에 헌신짝처럼 버려진 토막난 술기바퀴를 바라보노라니 불현듯 영정사진속의 할아버지가 또다시 천년 묵은 비술나무아래에 나타나 그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소와 나누던 말소리가 들리고 그 애처로운 소리소리가 채찍처럼 또다시 가슴 아프게 나를 후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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