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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며 생각하며
□ 김인섭
날짜  2017-11-30 16:06:40   조회  179

증년(增年)하며 쫓아온다는 심리적 변화인가 무력감, 무위감, 무료감 등 이상감각이 스멀거리며 감지된다. 그래서인지 원래 웬만한 용무가 아니라면 나들이가 질색이더니 요즘엔 늘 원인불명의 충동이 일며 어디론가 확 가고 싶은 생각이 불뚝거린다. 오늘도 심심해나더니 이 동네서 100년사를 자랑한다는 식물원을 돌아보려 자리를 털고 일어난 것이다. 이 동네에 와 살면서 강산이 두번이나 변했는데 지척에 두고도 가보지 않은 관광명소이다.

입구에 세워진 조감도를 보니 여기에는 중국 북방의 거의 전부 교목들이 자라고 타국 수종과 극지식물도 다수가 귀화되여 생장하고 있다는 얘기다. 록음이 우거진 계곡에 조성된 자그마한 인공호수를 중심으로 주위에 정교한 조형물들과 여러가지 대중 서비스 시설들이 축조되였는데 사계절 전천후(全天候)로 관광과 레저를 즐기는 명당으로 충분하다. 게다가 희귀멸종위기식물의 번식, 자생지 재현, 신품종 개발, 화단 조성 등 자연복원 프로젝트가 속속 진행되면서 식물학 데이터뱅크(资料仓库) 창고로 불리우며 전문학자들과 대학생들이 운집하는 과학연구와 교육의 장소이기도 하다. 심청색으로 청푸르른 나무숲과 종종색색의 백화가 릴레이를 펼치는 화단들은 단지 관상 공간이 아니라 식물계를 번영시키고 생태계 가치를 살려내는 보고라 해야 할 것이다.

북방 식물의 본산(本山)이라 불리는 이 공원을 거닐면서 유서깊은 이 자연경관이 몇세대의 지성인들의 심혈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였다. 오늘도 제복을 정히 차려입은 정원사들은 전지가위를 들고 무더위 속에서 여름 정지에 정진하는 진지한 모습을 선보인다. 나무밑 제초, 화단의 풀뽑기와 병충해 방지에 전념하는 원예사들의 여념이 없는 자태와 홀로서기 어려운 나무들에 지지대를 세우는 년장자들이 더위 속에서 고전을 겪는 모습은 가상하다고 형용한다. 이 천혜의 관광지는 세세대대 로동자들 노력의 생생한 력사 기록인 것이다. 바로 그들의 기름땀이 이 촌지의 땅을 식물창고, 관광지, 레저명소로 건설하였고 관객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 주면서 도시의 꾸밈새에 생기와 활력소를 불어넣고 있다.

대자연의 순환에 따라 오는 여름인데 오늘의 감회는 사뭇 다르다. 봄에 씨앗을 뿌리고 가을의 수확을 바라는 것은 인지상정이라 해야 한다. 그러나 그 씨앗이 싹트는 봄을 거쳐 숲을 이루며 열매를 맺는다는 결실은 여름의 고역이라는 단계를 넘어야만 알찬 수확을 얻는 것이다. 그렇다면 뭇 사람들에게 자연과 교감의 기회를 만들어 주고 멎진 추억을 만드는 이 관광지에는 인간의 지혜와 땀과 열의가 가득 담겨있고 속을 말리는 심사숙고와 슬기로운 실천이 쏟아져있을 것이다. 개조해야 할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고 가능성과 현실성을 가늠하면서 지속적이고 섬세한 사업을 전개했다는 명증인 것이다.

지난날 치기(稚气)와 만용(蛮勇)을 부리며 내달리던 나를 돌아본다. 새싹을 틔우던 약관(弱冠)인 20대와 체면의 승화를 꾀하던 이립(而立)의 30대는 희망을 향해 도전하며 치닫는 나날의 연속이였다. 대자연의 칠팔월 같은 불혹(不惑)의 40대 장년 세월에는 결실을 위해 나름대로 호흡 조절을 하며 담금질과 면려(勉励)를 지속하던 고난의 길이였다. 그렇다면 인생을 초가을이라는 지천명 50대에는 정녕 풍성한 결과물과 웃음보따리를 앞에 놓고 빈정거려야 되지 않았을가. 그런데 무엇을 위한 삶을 우직하게 고집했는데도 이순(耳顺)이 되고 봐도 별로 내놓을 게 없어 황당하기도 하다. 더구나 어쩔 수 없이 사회의 가장자리에 밀리는 현실을 받아들이자니 참 어렵다.

세상을 살면서 모든 것을 꿰뚫는 지혜를 지녔다라면 좋았을텐데 불행하게도 나에게는 그런 재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늘 청운만리의 과욕을 부리고 착실한 실천을 외면하면서 개구리 뜀질로 살아왔다. 거기다 교만에 잠기며 인생의 여름에 필수 작업을 허투루한 업보가 삶을 랑비하고 지치게 한 원흉이 아닐가 본다. ‘여름에 하루 놀면 겨울에 열흘 굶는다.’라는 전언을 새겨본다. 여기서 류추하여 ‘여름에 하루 잘 못하면 겨울에 백날을 굶는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성공적인 인생을 살려면 높이 서서 멀리 보기 전에 낮게 서서 자세히 보는 것, 닫는 말에 채찍질 하기 전에 띄염띄염 걸어도 황소 걸음을 걷는 것, 대업을 바라기에 앞서 이소성대(以小成大)의 정신으로 모든 작은 일들을 딱 부러지게 하는 것, 이 것이 인생의 좌우명이여야 한다. 간혹 젊은이들과 인생담을 나눌 때면 이 것이 내 생의 실패작에서 얻은 교훈이라고 용기를 발휘하여 뇌까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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