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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직 소년일 때
□ 김재호
날짜  2017-12-7 16:10:23   조회  292

1

아범은 일곱살에 눈을 잃었다

애들과 장난치다 다쳤다고

동리사람들은 그리 말하고 다녔다

바람난 엄마의 그 짓을 훔쳐보다

사내에게 맞은 거라고도 했다

보상은 없었다

아비를 일찍 여읜 죄였다

만질 수밖에 없어 슬픈 아범에게

어느 날 할머니가 그랬다

하느님의 철없는 막둥이의 장난이라고

마흔아홉 하얗게 바랜

할머니의 싸늘한 머리결을 만지작하며

집 나간 엄마를 가만히 불러봤다

몰래 또 불러봤다

 

2

어멈은 세살 반에 발달이 멈췄다

방구석 오래된 286컴퓨터처럼

멀쩡한 덩치에 머리는 늘 버벅거렸다

내리 다섯 딸만 부자 아비의 설음이

술 먹은 발질로 꽂힌 거였다

색시가 고와?

오도가도 시골구석 양로원에서 만나

식을 올리기 전 아범은

쭈뼛거리다 겨우 한마디 뱉었다

그러고는 이내

눈가를 매만지며 머쓱해졌다

그리고 문제의 소년이 태여났다

젖을 물리는 어멈의 눈길이 너무 진지해서

어쩐 일이냐고 다들 놀랐다

더러 심성이 여린 할멈들은

메마른 눈물을 짜내기도 했다

 

3

언제부터였나

대놓고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애가 좀 모자란 것 같소

머저리가 낳은 게니

제 에미보다야 낫겠지

그때만도 멀쩡한 애였다

또래들이 학교갈 때 쯤이였지 싶다

못된 녀석들의 갈굼이 시작되였다

툭하면 재수없다 엉덩이를 걷어찼다

폭죽에 손가락을 하나 잃었다

똥오줌도 먹였다

한쪽 고막이 나간 건 아무도 몰랐다

녀석들의 꼬드김으로

달려오는 승용차에 다리를 디밀었고

동리학교도 꿈 꾸지 못했던 소년은

난생처음 하얀 시트에 누워봤다

손등을 톡톡 치는

하얀 가운의 녀자가 마냥 좋았다

퇴원이 싫다고 개기기도 했다

 

4

아들이 보이지 않는 동안

철없던 어멈은 내내 끙끙 앓았다

아범의 한숨이 늘어터질 무렵

소년이 돌아왔다

하느님의 철없는 아들처럼

못된 녀석들의 꼬드김은 계속됐다

이웃 새댁의 치마를 들추다 얻어터졌고

뉘집 김치움에서 사과를 훔치다 터졌다

타작마당에 똥을 질러놓고 또 터졌다

안스럽게 바라보던 동리 몇몇도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메마른 눈물을 짜내던 할멈들도

혹시라도 욕 볼라 피해다녔다

 

5

이때쯤이였을 게다

다른 세상에서 나왔을 법한

하얗고 예쁘장한 소녀가 들어왔다

낯선 아우라에 다들 주춤했지만

아우라는 하루만에 무너졌다

벙어리에 고아였다

소년은 소녀의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녔다

하얀 가운의 녀자의 냄새가 소녀에게서 났다

어멈에게는 없는 냄새였다

 

6

아무도 기억하기 싫은 어떤 밤

끌리다싶이 멋 모르고 불려나간 소년은

알이 못다 팬 강냉이밭 한가운데에

겁탈을 당해 간들거리는 목숨을 봤다

소녀의 시린 눈물을 만지작하다 잠들었다

풀벌레소리가 유난히도 살벌하던 밤이였다

다음날

영영 말을 잃어버린 소년은

현행범으로 현장에서 끌려갔다

동리에서 더러 쉬쉬했지만

아무도 나서지는 않았다

아무도

 

7

그 후로 어멈의 소리가 뚝 끊겼다

그리고 아무도 기억 못할 어떤 날

어멈이 사라졌다

강기슭 가지런히 늦서리에 젖은

신발 두짝이 유물로 남았다

하느님이 막둥이를 다시 데려간 거라고

아범은 그리 믿었다

그리 믿었다

그리고 그 해

첫눈이 다 덮어버릴 듯 모질게도 퍼붓던 날

볼 수조차 없었던 엄마의 뒤모습을 생각하며

하염없이 눈물만 새김질하다

없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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