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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아이의 스무해
□ 남애청
날짜  2017-12-28 15:21:04   조회  378
직장 보일러가 고장나면서 급히 정비에 들어가는 바람에 갑작스런 꿀맛 휴가를 맞게 되였다. 뭐니 뭐니 해도 인간의 본성이란 남이 가지지 못하는 것을 내가 가졌을 때 가장 행복해하는 하는 것 아닐가. 남들 다 출근하는 월요일 아침, 갑자기 더이상 이 달콤한 휴가를 그냥 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하지만 한 일이란 고작 아들애를 데리고 병원 가는 일이였다. 찔끔찔끔 발작하는 비염 때문에 치료에 용하다는 중의를 소개받고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는데 이 기회에 병원에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치료를 예약하고 나오는 길에 동생이 전화가 걸려왔다. 이 좋은 기회에 자기 보러 상해에 놀러왔으면 하는 뜻을 비치며 비행기 티켓까지 끊어주겠단다. 큰 유혹이였다. 하지만 끝내는 아들 옆을 지키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일이 바쁘다며 아들 마중 한번 가보지 못했는데 이 기회에 학교에 마중도 가보고 병원으로 데려가고 또 숙제를 하는 아들의 옆에서 책을 읽으면서 동무도 해주었다. 때론 “엄마, 지금 내가 숙제하는 걸 감독하는거야?” 하며 부르튼 소리를 하는 아들의 성화에도 개의치 않고 귀엽다며 숙제하는 모습에 카메라를 들이밀기도 하면서 말이다.

아주아주 먼 미래일 것 같던 일들이 갑자기 내 앞에 들이닥쳐서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세월은 빠르다. 마흔을 앞두고 있으니까 인생의 순간순간에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들이 꽤 많아진 것 같기도 하다.

올 여름, 집의 벽을 다시 칠하면서 곳곳에 남겨진 아들애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유치원 시절 이 집으로 이사왔으니 자신의 령역을 표시하기라도 하 듯 존재감을 과시했던 아들애의 력사를 돌이켜보게 되였다. 여러 그림 중에서 이 엄마의 고정석인 소파 우에 그린 그림은 정말 지우기가 아쉬운 그림이였다. 이 엄마의 마음엔 걸작이 따로 없다고 생각되여 사진에 남겨보았다.

그때는 머리숱이 꽤 많았던 젊은 아빠와 머리에 진주가 줄줄이 박혀있는 럭셔리한 머리끈으로 머리를 묶은 엄마가 아들의 마음에는 꽤나 멋져보였을 것이다. 고마운 건 그림 속의 고슴도치머리 아들과 함께 있는 우리 가족 모두가 웃고 있다는 것이였다. 걱정없이 웃고 있는 이 엄마와 아들에 비해서 아빠의 까만 눈동자가 아들과 엄마를 살피는 걸 봐서는 우리를 관찰하고 보호하는 아빠의 역할에 대해 아들이 꽤 든든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다만 태여나서부터 늘 함께였던 할머니가 왜 함께 하지 않았는지, 여덟살까지도 밤마다 할머니와 함께 잘 정도로 껌딱지였는데 그 그림을 볼 때마다 할머니는 얼마나 서운하셨을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벽의 보수작업을 하는 아주머니들의 바쁜 손길이 왔다갔다 하면서 아들의 다시 못 올 유작(幼作)이 사라지고 있다. 세월이란 새댁이 시집 와서 김장 서른번을 담그면 가버린다는 어느 대가의 말씀이나, 우리 아들이 이젠 6.1절이 세 번 밖에 남지 않았다며 아쉬워 하던 말이나, 애가 열살이 되면서 갑자기 ‘이제 내가 너를 키운 시간만큼의 시간이 더 흐르면 너는 내 품을 떠나겠구나’라는 자각이 밀려오는 것까지. 이 모든 것들은 사실 그 세월이란 것의 무게를 느끼는 각자의 방식일 수밖에 없다.

어느새 내 나이가 마흔에 접어들었다. 남편을 잃고 두 살, 열 살 된 두 딸을 데리고 혼자 가정을 이끌던 엄마의 그 나이와 똑 같은 나이다. 아들 역시 아빠를 잃고 서러워하던 열 살의 나와 똑 같은 나이가 되였다.

내가 금방 아들을 낳았을 때 한 후배가 그랬다. “무책임한 출산은 살인보다 더한 죄”. 후날 다섯살짜리 사내아이의 엄마가 된 그 후배는“내가 그때 왜 그렇게 무시무시한 말을 했을가요”라고 말하며 기겁을 했지만 부모의 책임과 의무의 무게를 알려주는 말이기도 하니 전혀 과하지 않다고 위로를 해준 적이 있다. 내가 엄마에게 그 얘기를 했을 때 엄마는 “못 배운 이 엄마한테 자꾸 심각한 말을 하지 말어라. 그냥 책임을 다 하는 거지.”라고만 하셨다.

그런 책임을 다 하던 시간이 지나고 그 딸이 다시 자식에게 책임을 다 할 나이가 되자 엄마의 시간은 올곧이 엄마만의 것이 되였다. 우리 엄마는 그 굴레로부터 자식들이 자기 자리를 찾기까지 꼬박 스무해가 걸렸다. 내가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신분증을 받아쥐고 부모를 떠나 멀리 성인으로서 첫 관문인 대학생활을 시작하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스무해이다. 사실 엄마에게 아이랑 함께 할 시간은 고작 스무해 뿐이다. 그 것은 한 사람이 그 힘든 시기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시간이기도 하고 그동안 한 아이가 성인으로 자리라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내가 멍 때리는 동안 아들은 학교 숙제 가운데 비유법이 있다면서 어떻게 쓸가 하고 물어온다. 엄청 기대하는 목소리로 내가 “그래 네 생각엔 이 엄마가 무엇 같애?”라고 물었더니 아들은 서슴없이 “호랑이 같지.”라고 대답했다. 순간, 동생한테 갔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잠간 스치기도 했다. 천사 정도는 아니나 그래도 이 큰 얼굴을 믿고 보름달 정도를 기대했었는데 호랑이라니, 약간의 충격과 그나마 나를 돌아볼 기회를 줬다는 것에 감사하면서 나는 아들에게 숙제를 가르쳐줬다.

어쩌랴, 고작 우리는 스무해를 같이 하는 건데 나 역시 우리 엄마에게는 그다지 고분고분한 딸이 아니였음에 큰 긍정을 바란다는 건 무리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스무해 속에서 일주일이 긴 날은 아니고 백세 시대에 스무해 또한 별로 긴 날은 아니다. 호랑이 같은 엄마는 교육의 차원이였다는 비겁한 변명이 먹히지 않는다고 해도 원망 말자. 어차피 그 건 엄마라는 이름의 굴레니까.

어쨌든 내 휴가동안 교문에서 만난 우리 모자의 포옹은 뜨거웠고 엄마인 내가 그 기다림의 시간이 엄청 행복했음을 아들이 기억해주기만 바라본다. 늘 바삐 사는 엄마는 최선을 다 한 모습이라고, 이런 내 모습은 내 엄마로부터 왔고 그 게 또 고스란히 내 아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지기도 바란다. 그리고 십년이 지난 뒤, 내가 아들애에게 목 매인 날부터 스무해가 지나면 아들애가 스스로의 날개가 굳 듯이 나 역시 잃어버렸던 내 시간을 마음껏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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