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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의 아들 황대년
날짜  2018-2-13 8:21:04   조회  248

필경은 ‘범위’ 안의 사람들인지라 의연히 신중하고 소심하였으며 이미 정해진 규칙에 따라 행할지언정 지뢰밭을 반보도 내디디려 하지 않았다.

우리는 황대년의 생전의 동사자들을 많이 만나보았다. 황대년이 화를 낸 적이 있는가고 물으면 그들은 머리를 가로저으면서 생각나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황대년의 비서 왕욱함을 만나서야 황대년이 과제 구성원들의 사업태도 문제로 ‘핸드폰을 메친’ 적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는 보배라도 얻은 듯한 기분이였다.

과학을 위해서라면 황대년은 모든 것을 아끼지 않았다. 지질궁 옆의 기계창고에 찾아가 시범비행에 성공한 견본용 기계 앞에서 철거팀이 갑자기 들이닥쳐 기계창고를 허물어버리려 할 때 황대년이 다급한 마음에 트럭 앞에 드러누운 모습을 상상하면서 어망결에 당시 황대년이 어디에 누웠댔는가고 물었다. 초건이 문 앞의 세멘트바닥을 가리키며 "저곳입니다, 바로 저곳에 누웠더랬어요." 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순간 우리도 그 빈땅을 멍하니 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사람들의 내심을 늘 들뜨게 하고 힘들게 했던 시대에 그의 근본과 개성은 얻기 힘든 것이였고 귀중한 것이였다. 이게 바로 이 사회가 부르짖는 고결함이고 우리 세대 지식인들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량심이고 책임이 아니겠는가?!

황대년을 탐방하면서 우리도 그의 친구를 알게 되였다. 황대년의 조수 우평은 무의식중에 시일공이 황대년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접하고 밤도와 여러 곳을 련결해 의사들의 합동진찰을 받게 한 사실을 알려주었다. 부동한 연구분야에 몸을 잠그고 있으며 귀국 전에 만나지도 못한 두 ‘천인 계획’ 전문가가 어떻게 되여 이와 같은 두터운 우정을 쌓게 되였는지가 매우 궁금하였다. 시일공을 취재하기 위해 우리는 거의 10일 동안 날마다 련락하였지만 번마다 "바빠서 후에 련락하겠다."는 메시지만 보내왔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11시에 시일공이 전화를 걸어와 "참으로 미안합니다. 이 기간 연구내용이 상당히 관건적이여서 밥을 먹는 것도 초로 계산하였다."며 해석했다. "초로 계산한다"는 말에 우리는 ‘시간을 아끼고 생명을 아끼지 않은’ 황대년이 떠올랐다. 다 같이 이름을 날리고 성공한 똑같은 ‘과학연구 미치광이’였다.

시일공은 같은 목표와 마음이 서로를 가까이 하게 했다며 귀국한후 같은 어려움과 도전에 직면하였고 그때마다 서로 용기를 북돋아주었다고 말했다. 후에 송별이야기를 하면서 시일공은 떨리는 목소리로 "무한한 충실성을 갖고 일하던 사람이 이렇게 떠났다…"는 한마디를 하였다. 우리는 더 묻지 않았다, 더 물을 필요도 없었다. 이렇게 한마음으로 조국에 보답하려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큰 뜻을 아직 이루지 못하고 몸이 먼저 죽는 것보다 더 애속하고 아쉬운 것이 있겠는가?! 그들의 몸에는 애국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에게는 애국도 있고 능력도 있으며 이들은 애국의 리상과 과학의 추구를 완벽하게 결부시킨 사람들이다.

동수문은 우리 나라 심부탐측대상 수석과학가이다. 처음에 그와 황대년의 사망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그렇게 감성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황대년의 과학연구 체제에 대한 기여와 과학연구 난관공략에 대한 혁신에 대해서는 일일이 말해주었으며 지어 많은 사람들이 감히 말하지 못하고 말하려 하지 않은 황대년의 과학연구 체제에 대한 도전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모두 알려주었다.

황대년은 과학연구 진척 속도에 조급하고 일에 비해 사람이 많다며 무턱대고 동수문과 따진 적이 있었다. 우리는 지도일군과 학술권위 이중신분을 소유한 동수문이 좋아하지 않을 것이며 심지어 황대년을 배척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동수문은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온 일에 대해서 당시 어떻게 황대년을 위로하고 또 어떻게 그를 지지해주었는가에 대해 말해주었다. 순간 우리는 내심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과학의 앞에서 실사구시하는 데 놀랐고 세속을 초탈한 처세술에 놀랐다.

우리는 동수문에게 "과학탐구에서 황대년의 발광에 대해 어떻게 리해할 것인가?" 고 물었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우리들을 순간적으로 납득시키는 대답을 주었다. "과학자는 반드시 이런 격정이 있어야만 혁신의 구동력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는 지질학을 연구하는 사람입니다. 지금도 산에 오르기 전에 주사를 맞아야 합니다. 반월판에 주사를 맞아야 합니다. 나의 반월판은 다 찢어졌습니다. 그러나 아주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한평생 하는 일이 자신이 원하는 일이였기에 행복합니다. 대년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일생에 자기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몇번 만났다는 것은 아주 행복한 일인 것입니다." 말을 마친 동수문은 자부심을 느끼며 환하게 웃었다! 그 웃음 속에는 탐구자의 당당함이 있었고 또 보국자의 진정함도 있었다. 그 시각 우리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우리는 그의 몸에서 황대년을 보았고 ‘중국에 항상 넉넉한 미치광이 과학자’ 군체를 보았다.

우리는 어쩌면 그들의 과학을 리해하지 못할 수 있겠지만 그들의 심령과 력량은 깊게 리해할 수 있었다.

우리는 마치 하루밤 사이에 하나의 열쇠를 찾은 듯이 황대년에게 다가갔다. 더 이상 문자의 어떤 수식도 필요 없었다. 이야기들이 마음과 글중에서 술술 흘러나와 마치 맑은 시내물마냥 그의 순수한 령혼을 비춰주었다. 이 세상을 떠난 사람이 꿈속에 빈번히 나타나는 습작경력은 이번이 처음이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밤, 공항에서 혼자 영국생활과 조용히 작별인사하는 황대년, 지질궁을 개축할 때 한손으로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다른 한손으로 대야를 들고 비를 받는 황대년, 들놀이에 나가 땅에 무릎을 꿇고 모두에게 사진을 찍어주느라 땀에 잔등이 흠뻑 젖은 황대년, 학급담임교원으로 있을 때 자기 호주머니를 털어 학생들에게 컴퓨터를 사주고 간행물을 주문해준 황대년, 프로젝트를 회보하기 전에 속효구심환 한줌을 입안에 집어넣는 황대년, 며칠밤 련속 분투한 후 땅바닥에 쓰러지고는 학생들더러 소문을 내서는 안된다고 당부하던 황대년… 우리는 꿈속에서 황대년의 곁에 있었고 묻고 싶은 말들이 수없이 많았지만 어디에서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몰랐다… 이런 현실 같기도 하고 환상 같기도 한 꿈의 세계에서 수많은 감정들이 뒤엉켜있었다.

우리가 재삼 노력하였으나 장염은 인터뷰를 접수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타인의 진술을 통해서만도 황대년의 이야기는 사람들을 충분히 가슴 아프게 하였다. 그들은 인생길에서 서로 이끌면서 여태껏 얼굴을 붉힌 적이 없었다. 황대년은 될수록 시간을 짜내 장염을 데리고 학교에서 조직하는 활동에 참가하였고 안해를 위해 사진을 찍어주며 두 손을 잡아주었다.

더 많은 시간을 안해와 함께 보내기 위해 만약 당일에 돌아올수 있는한 그는 늘 회의가 끝나자마자 바로 공항,역전으로 달려갔다. 황대년이 돌아간후 장염은 대년만을 지키였고 더는 바깥세상과 접촉하지 않았다. 이런 일종의 시한부인생은 시시각각의 그리움보다 훨씬 의리 있고 정이 깊어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할 때마다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우평은 황선생님의 유일한 한쌍의 정장구두와 한벌의 정장 양복은 어느 한번 외국에서 열리는 회의 때 서둘러 산것이라고 말했다. 회의는 정장을 입을것을 요구하였다. 황선생님은 원래 이전의 방법대로 현지를 관할하는 친구의 정장을 빌려 입으려 하였으나 자신의 사이즈와 같은것이 없는것을 발견하고는 서둘러 한벌을 살수밖에 없었다. 이같은 공리화한 사회에서 황선생님은 몇억원의 대형 프로젝트를 취급하는 사람이였지만 소박하고 초연한 생활을 하였다.

이처럼 소박한 사람이였지만 학생들의 집에 곤난이 있다면 자기 호주머니를 털어 지원해주었는데 얼마나 많은 돈을 썼는지는 모른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아도 몇사람이 그처럼 할수 있겠는가? 때문에 황대년의 학생들은 "선생님은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말한다. 황대년은 그에게 다가오는 매 사람들에게 일종 심령의 감동과 일종 정신의 세례를 안겨주었다.

황대년은 이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생명의 빙점은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령혼에 불을 지폈다. 항상 깊은 밤중에 황대년을 마중하고 바래다주던 류국추는 아주 소박하다. 그는 "우리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하는것은 돈을 벌기 위해서이지만 황선생님은 무엇을 위해서였을가요? 나는 황선생님과 별로 말도 없었습니다. 황선생님은 차에 오르기만 하면 항상 잠이 들었지만 나는 그가 큰 인물이고 돈이 부족하지 않은 사람이라는것을 알았습니다. 그가 이렇게 필사적으로 사업하였지만 돈이 있어도 돈을 쓸 운명은 아닌가 봅니다."고 말했다.

류국추의 말은 우리의 심령을 찔러놓았다. 류국추는 의연히 황대년과 번갈아 사용했던 그 베개와 담요를 보관하고있다. 깊은 밤에 일하러 갈 때면 아직도 그 베개와 담요를 사용하고있다. 그는 "황선생님의 골회가 아직 장춘에 보관되여 있으니 만약 어느날 그의 골회를 고향에 가져가야 할 때 다른 사람들이 가려 하지 않으면 내가 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길림대학 예술학원의 요립화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어느 한번 황선생님을 "강박"하여 오락활동에 참가시킨적이 있다. 여러 사람들이 황선생님을 위해 "홍하곡"이란 노래를 신청하였다. 황대년은 노래가 끝나자 아주 기뻐하며 주동적으로 "전우를 보내며"란 노래를 또 신청해 불렀는데 이 노래는 그날 저녁 황선생님이 신청한 유일한 한곡의 노래였으며 감정을 다해 부른 노래였다. 그때 요립화가 "황선생님, '기러기'란 노래를 꼭 배우세요. 선생님의 카리스마와 잘 어울리는 노래입니다"라고 말하자 황선생님은 오히려 쑥스러워하며 "요선생님, 사실 나는 그래도 "나는 중국을 사랑한다" 노래를 제일 좋아합니다. 이 노래를 꼭 배울것입니다."라고 말했다.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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