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위치: 연변일보 >> 뉴스 >> 중국의 창 >> 국내일반 >> ‘모범적인 혁명군인’-조연
‘모범적인 혁명군인’-조연
날짜  2018-5-14 7:15:04   조회  133

[합비=신화통신] 소전진, 안휘성 수현 동남부에 자리잡은 이 작은 진은 겉보기에는 수수해도 이곳은 안휘성 첫 농촌당조직이 탄생된 곳이다. 진 동쪽의 원림식건축물이 유난히 눈에 띄고 울안에 높이 솟아있는 ‘수현혁명렬사기념탑’은 이 작은 진의 랜드마크 성격을 띤 건축물로서 해마다 대량의 관광객, 사생, 당원간부들이 이곳을 찾아 첨앙, 참관과 학습한다. 혁명렬사 조연의 기념묘지도 이곳에 있다.

 

조연의 원명은 준관이고 자는 박천이다. 1920년 조연은 안휘 무호고학학교에 입학하였으며 학교학생대표로 추천 선발되여 안휘 무호학생련합회에 참가함과 아울러 지도성원으로 되였다. 1921년 안경 ‘6.2참사’성원활동에 참가하여 학교측으로부터 강제퇴학을 당했다. 이해 가을 안휘무호공립직업학교에 입학하여 학교학생회 주석으로 당선되였다. 1922년 가을, 이 학교의 교장과 학감이 학생들의 건강을 무관심한 데서 한 학생의 사망을 초래하였으며 조연은 투쟁에 앞장서 참가하였기에 학교 리사회에 의해 학적을 박탈당하였다.

1924년 조연은 황포군관학교 제1기에 입학했으며 입학한 뒤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같은 해 11월에 그는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뒤 황포군관학교 교도퇀 학병련에 파견되여 당대표직을 담임했다. 1925년 부분적 황포군관학교 교직원과 학생들이 ‘중국청년군인련합회’를 설립하였으며 조연은 이 련합회의 골간성원이였다. 2월초, 조연은 학생련을 거느리고 진형명을 토벌하는 제1차 동정에 참가하였으며 그의 ‘용맹’한 표현은 당대표 료중개의 칭찬을 받았다. 6월, 조연은 1퇀 3영 8련 련장으로 전임되여 양희민, 류진환의 반란을 토벌하는 룡안동전투에서 병사를 거느리고 우회적으로 적후를 습격하는 데 성공하여 일거에 승리를 거두었다. 제2차 동정전투에서 명령을 받들고 퇀예비대로 되여 자기보다 몇배나 더 많은 적을 격파하고 조산으로 진군하였다. 후에 공을 세워 제1군 제3사 9퇀 1영 영장으로 승진하였다.

1926년 5월, 조연은 엽정독립퇀에 파견되여 제1영 영장직을 담임했다. 6월 2일, 엽정독립퇀이 적군에게 포위되자 조연은 1영을 거느리고 지원에 나섰으며 그날 밤으로 황모포에 도착하여 전투에 투입했다. 이튿날 새벽, 전퇀 전구간 반격으로 적군 6개 퇀을 격파하였으며 또 승승장구로 추격하여 유현을 점령함으로써 북벌전쟁에서 첫 대첩을 이룩하였다. 룡산포로 진군하는 길에서 1영이 적의 지원병 두개 퇀에 포위되자 조연은 전영의 화력을 집중시켜 당지 농민협회의 지원하에 적군을 격파하고 례릉성을 점령하였으며 또 련달아 류양, 주주를 함락하였다. 8월 19일, 1영이 전위대가 되여 우군을 협력해 평강을 공략하였다.

오패부가 북벌군의 전진을 막기 위하여 2만여명을 긁어모아 직접 정사교 방어를 포치하고 천여명의 결사대를 무어 북벌군 제4군 군부 부근까지 공격해오자 엽정이 조연을 파견하여 부대를 거느리고 지원하도록 하였다. 1영은 련속 돌격을 거쳐 적군의 결사대를 격파하였으며 군부가 위험한 고비를 넘기게 되였고 조연과 1영은 포상명령을 받았다. 8월 27일, 엽정독립퇀이 정사교를 점령하였다.

8월 30일, 하승교 공격 전투에서 조연은 1영을 지휘하여 중상을 입은 2영 영장 허계신을 구출하고 1영, 2영 장병들을 조직하여 적국과 하승교두 진지 쟁탈전을 벌려 오패부가 직접 지휘하는 적군주력을 격파하여 무한으로 통하는 마지막 대문인 하승교를 열어놓았다.

9월 1일, 각로의 북벌대군이 무창성 아래에 운집하였으며 조연은 1영을 거느리고 돌격선봉대로 되였다. 전 영 대부분 장병들은 대전을 앞두고 집에 보내는 편지를 써 맹세코 적과 생사결단하려는 결심을 표했다. 9월 5일 새벽, 조연이 거느린 1영은 성벽 우의 불탄을 무릅쓰고 사다리를 세우고 성벽에 올라 적군과 육박전을 벌렸으며 대부분 장병들은 장렬하게 희생되고 10여명밖에 남지 않았다. 이 전투에서 조연도 머리에 총탄을 맞고 희생되였는데 당시 겨우 24세였다.

조연 등 렬사들의 희생정신은 광범한 독립퇀 장병들을 격려하였다. 10월 10일, 무창성을 드디여 점령하였다. 전투 후 독립퇀당지부는 홍산에 묘지를 세워 여러차례 도시를 공략하는 여러 전투에서 희생된 장병들과 조연을 합장하기로 하였다. 묘지 앞에는 비석을 세우고 그 우에 가로로 ‘호기가 영원하리(浩气长存)’라는 글자를 새겨놓았다. 무덤 앞에는 묘비를 세우고 비석에 가로로 ‘정신불사(精神不死)’라는 네 글자를 새겨넣고 중간에는 ‘국민혁명군 제4군 독립퇀 북벌 여러 도시 공략전에서 전사한 여러 장병 렬사묘’라고 새기고 왼쪽에는 조연 등 191명 렬사들의 이름을 새기고 오른쪽에는 ‘선렬의 피’, ‘주의의 꽃’, ‘여러 렬사들의 피로 만들어진 철군의 영예’, ‘무산계급의 희생자’란 네마디를 새겨놓았다.

주은래는 "국가의 독립과 인민의 해방을 도모하기 위하여 용감히 희생되였으므로 이는 매우 영광스러운 것이다."라고 조연을 찬양했다. 엽정은 그는 "모범적인 혁명군인임과 동시에 나의 가장 훌륭한 동지이다."라고 말했다.

새 중국이 창건된 후 조연은 혁명렬사로 추인되고 《중화영렬전》에 편입되였다. 그의 고향 안휘 수현 소전진에는 또 수현혁명렬사릉원이 설치되여있으며 조연의 사진과 빛나는 사적도 릉원렬사사적진렬실에 진렬되여있다.

안휘 수현 소전진 선전위원 조옥비는 조연 렬사의 제4대 친족이다. 선인의 영웅적 옛이야기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조옥비는 여전히 아주 감개무량하여 매년 청명의 정기적인 제사는 선인들에 대한 가장 깊은 추모라면서 "그에게 가장 탄복되는 것이 바로 자기의 리상신념에 대한 확고한 정신이고 소가정을 버리고 대가정을 돌보는 것이다. 이는 시종 우리를 성장시키고 당의 사업에 뛰여들도록 격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QR코드를 스캔하여 위챗 모멘트에 공유하여주십시오.
저작권성명: 본 사이트 기사를 전재하실 경우에는 연변일보 사명과
기사 작성자명(기자명)을 반드시 표기하여주십시오.
댓글쓰기 글자수 제한 (200/자)
공지사항
출국가이드
항공 렬차 안내
환률정보
주간 인기 클릭
종합 스포츠 경제 사회

금주의 론평
문화지능 향상은 민족번영의 포석
□ 김인섭
무심히 책장을 뒤적거리다 어느 기업의 인재공모문에 ‘문화지능
청춘도 아프다
□ 장경률
5.4청년절이 지난 지 며칠 된다. 올해는 99돐, 래년이면 100돐이
연변조선족자치주 인구
□ 정호원
장백산 아래 오붓한 백도라지마을이라면 당연히 연변조선족자치
고개를 들어 별들을 보라
□ 장경률
<<고개를 들어 별들을 보라, 당신 발만 내려다 보지 말고!
다발성 민질
□ 정호원
경영업주 사이엔 모방과 흉내의 련쇄반응이 장사진을 이루며 마
우리축구 건강 웰빙
핫!이슈
지면보기
2018년 05월 24일
2018년 05월 23일
길림신문 료녕신문 흑룡강신문 연변TV 조글로 중앙일보 경기신문 인민넷
기자블로그
《연변일보》 주문 환영
종합신문 주문
 
연변일보  |  리용약관  |  제휴제안  |  기사제보  |  광고신청  |  구독주문  |  오시는 길

주소:중국 길림성 연길시 신화가 2호 (中国 吉林省 延吉市 新华街 2号)
Tel: +86-433-251-3100  |   Email: webmaster@iybrb.com
吉ICP备09000490号 | 吉新出网备字005号 | Copyright © 2007-2018
 

吉公网安备 22240102000014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