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위치: 연변일보 >> 오피니언 >> 칼럼 >> 하향 통행증
하향 통행증
□정호원
날짜  2018-3-28 16:07:50   조회  579

문화대혁명기간에 역시 지식청년이란 신생사물이 태여났다. 지식청년의 류의미가 또 하향지식청년과 귀향지식청년이라는 종의미로 분할됐다. 도시졸업생은 하향지식청년이고 농촌졸업생은 귀향지식청년이였다.

1969년 3월 7일 1만 8000명 상해지식청년들이 연변에 내려왔다. <<지식청년들이 농촌에 내려가 빈하중농의 재교육을 받는 것은 매우 필요하다>>는 모주석의 최고지시를 받들고 농촌에 진군했다. 그때로부터 빈하중농은 인격가치가 높아졌다. 한편 지식청년이라는 류행신조어가 처음 변강에 생겨난 시대였다. 상해에서 온 그들은 화입구(火入口)를 처음 본다며 거꾸로 엎디여 들여다보았고 쌀이 나무에서 열매로 맺히는 줄로 알고 있었다.

필자의 세대도 하향과 귀향의 영합으로 20대를 고향에서 동고동락했다. 성향의 간극이 바야흐로 줄어들 무렵, 리별의 환송식이 연거퍼 열렸다. 하향패 친구들이 하나둘 선후하여 빈하중농 재교육 추천이요, 부모퇴직 취직이요 하면서 상경했다. 호미자루를 동댕이치고 출근족이 된 그들은 하경의 단련을 완전히 결속지었다. 하지만 귀향은 숙명적으로 영원히 재교육졸업증이 불가능하였다.

필자도 상경하여 사업에 참가하니 단위에서 또 하향과 귀향의 세대들과 약속처럼 해후하게 될 줄이야… 상봉의 기쁨이 인차 거품으로 갈아앉았다. 로임조절, 직함평정, 사업년한계산에서 하향족들은 농촌에 내려간 해부터 보관서류 자료에 당당히 기입했다. 허나 귀향족들은 농민부모가 물려준 농령이 무효로 터부시란다.

후에야 안 일이지만 하향공령의 내막은 소운이라는 당시의 하향녀청년에 의해 출세했던 거다. 모택동의 고향 호남성 상담현의 지식청년인 소운은 과감히 생각하고 용감하게 투쟁한 급진파였다.동란이 갈무리되여 소운이도 호남성 주주시 상강기계공장 남화유치원에 안치되였다. 허나 로직공들보다 하향력사 때문에 공령이 짧았다. 로임급별, 주택분배, 복리대우, 퇴직문제에서 밑질 건 명약관화였다 그녀는 사실정황을 상급에 반영하기로 작심했다. 1982년 10월 7일 소운은 당중앙에 하향지식청년 년한을 공령으로 통계해줄 것을 청구하는 진정서(陳情書)를 발송했다. 당시 당중앙 총서기인 호요방 동지는 지식청년대우를 매우 관심했다. 1983년 6월 중앙 제365호 문건이 하달되였다. 하향농령은 전부 공령으로 계산한다고 지시규정했다. 하여 1964년-1968년도에 하향했던 전국 8000만 지식청년들의 운명에 일대 전환이 생겼다.

일개 보통 지식청년이였던 소운이가 중국젊은이 8000만명의 운명을 기적같이 개변시켰다. 이는 그 어떤 정치세력의 통치지배보다 우선 그녀의 과감한 의식창조, 대바른 렵기심이 일으킨 역할이라 겠다. 사회제도의 순조로운 질서 보장을 도와준 소운의 하향통행증은 독립적이고 능동적인 인간사고를 긍정한 메시지이다.

요즘 들어 귀향창업이 화제로 세간을 달군다. 그들도 소운이처럼 시국의 우대정책과 유리한 우세 발굴에도 주력해 업체개발과 산업추진을 도모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하향통행증의 유래를 들려준다. 정책을 합리하게 리용하고 구조조정을 슬기롭게 개척할 때 기상천외의 실효성을 맛볼 건 당연하다.

10억 넘는 농민들과 자식들은 지금도 촌락에서 쟁기와 마소와 농경지를 드다룬다. 퇴직금, 난방비우대, 공비치료, 보험향수, 령수증결산, 출장비청산이 한뉘 불가능한 자급자족, 자력갱생으로 초로인생을 영위한다. 50여년 지속된 호적제도는 사회주의시장경제를 실행하는 데서 로력자유류동을 엄중하게 속박한다. 이원(二元)결구호적제도는 인구등록, 관리제도 뿐만 아니라 공민평등화에도 균형을 던져준다. 필자는 가끔 페지된 공장건물이나 정리실업종업원들을 볼 때마다 20년 전에 상경하던 하향족 대오를 련상한다. 계획경제로부터 시장경제로 탈바꿈한 격변기가 더는 큰가마밥을 허용하지 않았다. 산업화, 상업화, 경영화 모식이 류입되자 기업, 공장, 집체단위, 전민소유제가 제일 큰 충격을 받았다. 판매시장이 확장되고 물가조절이 령활하다보니 기존운영 체계들이 일거에 도태되였다. 하향통행증의 향유기한이 완료만기된 듯싶다.

농령대군단부대들은 왜 아직도 ‘하향복음서’ 같은 창의서-도전장-고발신-을 작성할 꿈도 꾸지 못하는 걸가? 정부차원결책을 박애주의에 빙자하여 론난할 것이 아니라 모험계수, 창발능력이 낮은 자체의 취약성을 우선 질타해야 한다. 하향통행증 카드를 스스로 발급받아 푸른등을 켜게 해야 한다.

QR코드를 스캔하여 위챗 모멘트에 공유하여주십시오.
저작권성명: 본 사이트 기사를 전재하실 경우에는 연변일보 사명과
기사 작성자명(기자명)을 반드시 표기하여주십시오.
댓글쓰기 글자수 제한 (200/자)
많이 본 뉴스
오랜만에 맞는 반가운 혁명
하이힐(高跟鞋)의 기원에 대한 설은 다양하다.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는 자신의 키를 상쇄하기

방학다운 방학, 부모가 관건
중소학생 겨울방학이 6일부터 시작되였다. 학원가는 언녕부터 방학공부 시간표를 내놓고 광고에

기다림
기다림이란 쉬운 것 같지만 쉽지 않은 내공이다.자연과 함께 살다보면 사계절이 가져다주는 만물

줄인 가운데 첨가된 것이 있다
한차례 종합성 회의에서 22개 전문회의를 줄이고 10여만원의 사무비용을 절약하고 현, 시 간부가

하향 통행증
문화대혁명기간에 역시 지식청년이란 신생사물이 태여났다. 지식청년의 류의미가 또 하향지식청

 
연변일보  |  리용약관  |  제휴제안  |  기사제보  |  광고신청  |  구독주문  |  오시는 길

주소:중국 길림성 연길시 신화가 2호 (中国 吉林省 延吉市 新华街 2号)
Tel: +86-433-251-3100  |   Email: webmaster@iybrb.com
吉ICP备09000490号 | 吉新出网备字005号 | Copyright © 2007-2018
 

吉公网安备 22240102000014号